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의 비공개 예산 정보 유출 논란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으나 폭발력은 여전하다. 10일 시작된 국정감사의 주요 이슈인데다 심 의원의 추가 폭로와 사법처리 여부 등에 따라 언제든 정국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심 의원의 판정패’라는 평가가 우세하지만 청와대 등 정부 부처와 국회 업무추진비 실태 등을 점검하는 계기가 됐다는 긍정적인 면도 적지 않다.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등 예산 감시 활동을 벌여온 시민단체 ‘세금도둑 잡아라’ 하승수 대표는 “방만한 예산은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적폐인 만큼 문재인 정부가 의지를 갖고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등의 차이부터 먼저 정리하는 게 좋겠다.
“이른바 ‘밥값 3인방’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본래 취지에 안 맞게 밥 먹고 하는 이들 비용이 항상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특수활동비는 정보나 사건수사, 기밀성이 요구되는 정보수집 활동에 필요한 경비다. 특정업무경비는 특활비보다는 기밀성은 떨어지는데 수사와 감사, 조사 등을 할 때 사용하는 것이고, 업무추진비는 각종 간담회나 행사 경비로 쓸 수 있는 돈이다.”
-‘밥값 3인방’이 늘 논란의 대상인데 실제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 항목을 설치한 목적 자체는 어느 정도 인정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실제 쓰이는 실태를 봤을 때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시민단체들도 의견이 엇갈리는데, 항목은 두고 개혁은 하자는 쪽과 아예 항목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쪽으로 나뉘어 있다. 현재는 일단 자료를 모두 공개하게 하고 그것을 보고 결정하자는 방향이다.”
-부처들이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공개한다고는 하나 너무 간략한데다 기준이 제각각이어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로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는 데 기준이 정확하지 않다 보니 들쭉날쭉이다. 어느 부처는 시간과 날짜, 액수와 용도까지 공개하는가 하면 월 단위로 간략한 집계만 내놓는 곳도 있다. 이번에도 드러났지만 전면적인 업무추진비 실태 조사도 안된데다 기준이 통일이 안돼 있으니 국민 입장에서는 불신이 크다.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고칠 수 있는데 역대 어느 정부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외국은 우리처럼 경비를 일괄적으로 배정하지 않는다고 하는 데 어떤가.
“선진국에서는 가령 업무관련 회의를 연다고 하면 거기에 필요한 비용을 청구해서 사용하는 게 일반화돼 있다. 사안별로 비용을 요구하면 지급하는 방식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예산을 통으로 배정해서 그 한도 내에서 본인이 알아서 쓰도록 한다. 어떤 자리는 1년에 얼마 하는 식으로 정해놓고 카드를 발급하면 그만이니 사적으로 써도 알 수가 없다. 정부기관 내에서도 한도 내 사용은 문제삼지 않는 게 관행이다.”
-심 의원의 폭로를 놓고 알 권리냐, 아니면 불법 정보유출이냐는 논란이 팽팽하다.
“국회의원이 청와대가 쓰는 예산을 감시하는 건 정당한 의정활동이다.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 불필요하게 논란이 커진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자료 입수 과정에서 비정상적 방법을 사용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자료를 공개하는 방식의 문제다. 시민단체도 마찬가지지만 통상 어떤 자료를 구하면 상대방에게 소명을 요구한다. 일종의 확인 절차를 거치는 것인데 심 의원은 그런 과정을 생략했다. 그러다 보니 청와대의 반박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고 제3자 입장에서는 별것 아닌 걸 부풀린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가 심 의원을 고발했는데 실정법에 저촉된다고 보는가.
“권한이 없는 곳에 들어간 침입 행위와 비인가 자료를 열람해 유출한 행위는 정보통신망법과 전자정부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고의성이 문제가 되는데 심 의원이 불법성을 몰랐다면 필요할 때마다 들어가서 보지 수십 만 건이나 반복적으로 다운을 받지는 않았을 거다. 물론 취약한 시스템을 방치한 정부의 책임도 있지만 심 의원 또한 열어보고 이게 아니다 싶으면 중지했어야 한다.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삼성X파일을 폭로했던 고 노회찬 의원의 사례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며 심 의원을 옹호하고 있다.
“노회찬 의원은 비인가 시스템에 들어가 접근 불가능한 정보를 입수한 게 아니라 출처가 명확한 정보를 받아서 공개한 것이라 상황이 다르다. 보도자료는 면책특권에 해당됐으나 인터넷에 올린 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된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즉 심 의원은 자료 입수 과정이, 노 의원은 공개 방식이 문제가 된 거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맞지 않다.”
-정작 심 의원은 시민단체의 자료 공개에는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국회에 지급되는 비용 가운데 입법 및 정책개발비라는 게 있는데 올해 86억 원이 배정됐다. 그런데 공개된 보고서를 조사해보니 학위 논문이나 다른 연구기관 것을 표절한 게 많아 지난해 시민단체가 전체 의원들에게 자료 요청을 했다. 의원 3분의 2가량이 자료를 제공했는데 심 의원은 답변하지 않은 의원 중 한 명이다. 그런 분이 국민의 알 권리를 강조하는 건 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심 의원의 자료 입수 방식에 문제가 있다 해도 청와대 업무추진비의 투명한 공개는 필요하지 않은가.
“청와대와 국회의 업무추진비 공개는 심 의원 사태와 무관하게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 저희가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정보공개 소송을 내 2016년 3월 1심에서 모두 공개하라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항소해 2심에 갔는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며 시간을 끌더니 그 와중에 대통령이 탄핵됐고, 황교안 당시 권한대행은 국가기록원으로 자료를 넘겨버렸다. 결국 지난 1월 2심에서 청와대에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며 기각이 됐다.”
-이번 사태에서 청와대의 과잉 대응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현 청와대도 비밀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드러냈다고 본다. 처음 문제가 됐을 때 ‘아무리 시스템 보안이 뚫렸다 해도 의원이 무단으로 자료를 가져가는 것은 위법’이라며 고발하는 선에서 그치는 게 바람직했다. 유출된 청와대 자료 전체가 국가기밀이라고 한 것은 지나쳤다. 청와대의 대응이 옹색해 국민들의 의구심을 일으켰다.”
-심 의원이 공개하고 청와대가 밝힌 내역을 보면 김영란법 위반으로 볼 수 있는 것들도 있지 않은가.
“심 의원이 갖고 있는 자료에도 자세한 내역은 나와 있지 않다. 청와대에는 지출 항목마다 영수증과 증빙서류 등 세부자료가 보관돼 있다. 아무나 검증할 수는 없고 감사기관이 해야 기록을 제대로 했는지, 김영란법 위반 소지는 없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금액이 50만원 이상이면 참석자 명단까지 적도록 돼있다. 50만원 이하라도 어떤 목적인지는 간략히 적은 내부 서류가 남아 있어야 한다. 국회와 청와대의 소모적인 공방보다는 감사원의 철저한 감사가 가장 효과적이다.”
-국회도 업무추진비 내역을 공개하라는 게 여론인데, 정작 국회는 미온적이어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현재 정의당과 바른미래당은 공개에 찬성하고 있지만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입을 닫고 있다. 공개 여부를 결정할 권한은 국회의장단에 있지만 두 당이 반대하면 밀어붙이기가 어렵다. 게다가 국회 업무추진비는 사무처 직원도 쓰는 등 해당자가 많다. 수혜자가 많을수록 반발이 심하기 때문에 공개가 쉽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저희가 낸 정보공개 소송을 빨리 마무리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 거기에 주력하고 있다.”
-내년도 국회 업무추진비 편성 내역을 보면 113억 원으로 올해보다 오히려 10억 원이 늘어난 걸로 돼있다. 특수활동비가 줄어드니 업무추진비를 늘려 보전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한 아는 의원이 업무추진비를 받아 쓰고도 남아서 사무처에 반납 여부를 알아봤더니 ‘반납한 전례가 없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업무추진비의 용도가 대개 밥값이라 얼마든지 줄일 여지가 있다. 국회의원 300명 전체가 쓰는 건 토론회나 세미나의 부대비용 또는 해외출장 시 일부 경비 정도고 대부분은 보직자들에게 돌아간다. 꼭 쓸 곳만 제대로 사용하면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업무추진비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문재인 정부가 소극적이어서 실망스럽다는 반응도 많더라.
“사실 예산을 방만하게 쓰는 것도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적폐 가운데 하나다. 정권이 바뀌어도 관료집단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비밀주의를 지향하는 공무원의 속성도 그대로다. 대통령과 참모들이 의지를 갖고 중앙부처의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공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밀어붙이면 충분히 가능하다. 청와대부터 정보공개 의지를 확실히 밝히고 시행하기를 바란다.“
인터뷰=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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