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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대국 미국 VS 최빈국 아이티의 영토분쟁 ‘나배사 섬’

입력
2018.10.12 17:00
수정
2018.10.12 17:52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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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배사 섬의 위치 / 구글맵
나배사 섬의 위치 / 구글맵

세계에서 가장 힘센 나라 미국과 세계 최빈국 아이티가 대서양 서인도제도의 ‘나배사 섬’을 두고 조용한 분쟁을 벌이고 있다.

배 모양의 나배사섬은 카리브해의 자메이카와 아이티 사이에 위치한 면적 5.4㎢의 무인도다. 제주도 면적의 340분의1, 뉴욕시 센트럴파크 정도 크기에 불과하다. 1500년대 콜럼버스 탐험대에 의해 발견됐는데 식수 부족 등으로 350년간 큰 존재감이 없다가 1801년 아이티가 처음 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한편 아이티 옆 쿠바 관타나모(Guantanamo)에는 미 해군의 가장 오래된 기지 중 하나가 있는데 쿠바 영토 속 미국 점령지다. 나배사섬은 거리상 아이티와 더 가깝지만 미국은 군소제도(群小諸島ㆍ태평양 및 카리브 해에 산재한 소규모 미국령 섬과 환초들을 모두 일컫기 위한 지역명)의 하나로 섬을 관할하고 있다.

미국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구아노법(Guano Islands Act)’이다. 구아노법은 1856년 통과된 미 연방법으로, 미국 시민이라면 구아노가 매장된 주인 없는 섬을 영유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구아노는 바다새의 배설물이 굳어 만들어지는 천연비료인데, 19세기부터 농업비료 및 화학 재료로 각광받으면서 가치가 인정되어 왔다. 인산 함유량이 많아 유기질 비료 역할로 최적이다.

구아노의 가치가 커지자, 미국은 해당 법안을 기반으로 태평양에 흩어져 있는 무인도를 점령해나가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나배사섬이다. 그렇게 1865년부터 나배사섬에 대규모 채굴 시설을 가동하면서 미국은 1898년 스페인전쟁 때까지 이 섬에서 구아노를 채굴했다. 나배사섬의 매력은 구아노에 그치지 않았다. 1914년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었을 당시에는 이곳에 등대를 설치했다. 미국 동해안에서 파나마 운하까지 항행을 위해서는 나배사섬이 등대를 설치할 위치로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미국 해군의 관측소도 설치됐다.

나배사 섬 /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 보호국(U.S. Fish & Wildlife Service) 홈페이지 캡처
나배사 섬 /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 보호국(U.S. Fish & Wildlife Service) 홈페이지 캡처

아이티는 프랑스에서 독립한 이래로 나배사 섬에 대한 영유권을 줄곧 주장해 오고 있다. 나배사섬은 1804년 아이티의 일부였으며, 이러한 사실은 1825년 프랑스로부터 인정받았다고 말한다. 또 1889년 발간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역사적으로도 나배사는 초기 아이티 내부의 고유 영토로 인식되고 있었다.

아이티는 헌법상 해당 섬을 자국 소유로 두고 있지만 미국은 어류 및 야생동물 보호국(U.S. Fish and Wildlife Services)을 설치하는 등 자국 영토의 일부로 관리하고 있다. 때문에 현재 나배사 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미군이나, 미 야생동물 보호국의 특별 허가가 있어야만 한다. 아이티 어민들은 때때로 나배사 섬을 방문하지만 영구적인 정착은 어렵다.

세계 영토분쟁의 대부분은 과거 식민지 역사의 잔재다. 하지만 현대는 ‘제국주의’에서 ‘국제사회’로 바뀌었다. 때문에 제 아무리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논쟁에 무리하게 개입할 수 없다. 최빈국 아이티가 나배사 섬을 두고 미국과 계속된 분쟁을 할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전근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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