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의 압제가 싫어 남한으로 탈출했지만, 결국 남한 정권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고 이수근(1924~1969)씨가 사형 당한 지 49년만에 누명을 벗고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김태업)는 국가보안법 등 위반 혐의로 1969년 사형 집행을 당한 이씨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국가보안법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국가에 의해 위장간첩으로 낙인 찍혀 생명권을 박탈당했다”며 “권위주의 시대의 과오에 대해 피고인과 유가족에 진심으로 용서를 구할 때”라고 강조했다. 다만 그가 남한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여권 위조 및 행사, 외국환관리법 위반 등 혐의는 인정해 징역 2년을 내렸다.
북한의 고위 언론인(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이었던 이씨는 1967년 3월 22일 오후 5시,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군사정전위원회가 끝나자 유엔군 대표였던 밴 크러프트 준장의 세단 승용차에 올라타 40여 발에 이르는 북한 경비병의 사격을 피해 귀순했다. 그는 극적으로 북측 지역을 탈출하며 “자유가 그리웠소. 김일성은 오늘밤 분해서 편히 못 잘 것이오”라고 내뱉었다.
북한 탈출 후 이씨는 남한에서 ‘귀순영웅’ 대접을 받으며 북한의 실정을 알리는 강연을 다니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러나 이씨는 1969년 1월 위조여권을 품고 캄보디아로 향하다가 이중간첩 혐의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체포됐다. 당시 검찰은 “이씨가 북한의 지령을 받고 귀순한 위장간첩”이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혐의를 적용했다. 같은 해 5월 1심 법원은 사형을 선고했고, 판결 두 달 뒤 사형이 집행됐다.
2005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재조사를 거쳐 이수근 사건이 당시 중앙정보부의 조작으로 발생한 것으로 결론 냈다. 이씨가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걱정하며 제3국으로 망명하려고 했던 것에, 중정이 이중간첩의 누명을 씌운 것이다.
공범으로 체포돼 21년간 수감됐다가 2008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이씨 처조카 배경옥씨는 이날 선고 직후 “이제라도 명예회복을 해드려 다행이지만 아직 할 일이 많다”며 “이모부님의 이름으로 장학재단을 만들어 영원히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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