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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반정부 언론인 피살 의혹, 미 FBI 수사 참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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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반정부 언론인 피살 의혹, 미 FBI 수사 참여하나

입력
2018.10.10 22:58
수정
2018.10.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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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 간 뒤 실종된 언론인 자말 카쇼기.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2일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 간 뒤 실종된 언론인 자말 카쇼기.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왕실을 비판해 온 사우디 유명 언론인 자말 카쇼기(59)의 실종 사건 미스터리가 증폭되는 가운데,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미 연방수사국(FBI) 조사팀 파견 등 진상 규명을 위한 미국의 협조 의사를 밝혔다. 카쇼기의 실종 장소가 터키 이스탄불 소재 사우디 영사관인 데다, 그가 미국에서 지내며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로 활동해 온 사실 등 때문에 이 사건이 국제적 파문으로 비화하는 상황에서, 다수 국가가 참여하는 공동 수사가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펜스 부통령은 이날 오전 미국의 유명 보수논객 휴 휴잇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사우디가 요청하면 워싱턴은 FBI 전문가들을 터키 내 사우디 영사관에 보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이 같이 대답했다. 그는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든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의 이런 언급은 전날 카쇼기의 약혼녀인 하티제 젠기즈가 WP에 기고한 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약혼자의 실종 사건을 규명해 달라”고 호소한 직후 나온 것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8일 이 사건과 관련, "매우 우려하고 있다. 일이 잘 해결되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만 ‘FBI 수사팀 파견’ 등 미국의 지원이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다. 이 사건을 수사해 온 터키 정부는 ‘카쇼기는 사우디 왕실의 지시에 따라 계획적으로 살해됐다’는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사건 배후로 지목돼 국제사회의 비난 및 우려, 해명 요구를 받아 온 사우디 정부 측이 미국에 ‘수사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크지 않다. 게다가 사우디는 미국의 오랜 동맹국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공식 방문 국가로 사우디를 택했고, 사우디의 실세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와도 각별한 관계를 맺어 왔다. ‘사우디의 요청’이라는 전제를 단 상태에서 휴잇과 펜스 부통령이 문답을 주고받은 배경에는 이런 속사정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일 사우디아라비아 요원들의 터키 입국 장면이 담긴 터키 이스탄불 소재 아타튀르크 국제공항 폐쇄회로(CC)TV 화면. 터키 공영방송사 TRT가 10일 공개한 것으로, 화면 하단의 자막은 “10월 2일 새벽 3시 37분 9명이 공항 E게이트로 들어오고 있다”는 의미다. TRT 캡처ㆍAP 연합뉴스
지난 2일 사우디아라비아 요원들의 터키 입국 장면이 담긴 터키 이스탄불 소재 아타튀르크 국제공항 폐쇄회로(CC)TV 화면. 터키 공영방송사 TRT가 10일 공개한 것으로, 화면 하단의 자막은 “10월 2일 새벽 3시 37분 9명이 공항 E게이트로 들어오고 있다”는 의미다. TRT 캡처ㆍAP 연합뉴스

과거 사우디 왕실과 가까운 관계였던 카쇼기는 지난해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차기 왕위계승자에 임명된 이후부터 왕실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고, 지난해 9월부터는 신변에 위협을 느낀다면서 미국에 거처를 옮겼다. 미국 시민권도 신청했다. 그러다 지난 2일 터키 국적인 약혼녀 젠기즈와의 혼인 신고를 위해 터키 이스탄불 내 사우디 영사관을 방문했다가 실종됐다. 때문에 사건 초기부터 카쇼기가 사우디 측에 의해 살해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일었다.

이런 가운데, 뉴욕타임스(NYT)는 9일 익명을 요구한 터키 보안당국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카쇼기가 사우디 왕실 최고위층 지시로 암살된 것으로 터키 정부가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간 지 두 시간도 안 돼 카쇼기가 사우디에서 온 요원 15명에 의해 살해됐고, 시신도 그들에 의해 분리됐다는 것이다. 터키 현지 언론들은 사우디 요원들의 터키 입국 장면이 담긴 공항 폐쇄회로(CC)TV 영상, 용의자로 꼽힌 요원 15명의 사진 등을 10일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터키 정부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사우디 정부를 비난하면서도 ‘사우디 왕실 배후설’을 입증할 명확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사우디 역시 “카쇼기는 총영사관에 들어갔다가 곧바로 나갔다”며 살해 의혹을 부인하면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NYT는 “사우디와 터키 간 외교분쟁 압력이 커지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맹방인 사우디가 관여된 논란에 개입하기를 꺼리는 중”이라고 전했다.

물론 카쇼기가 살해된 게 아니라 사우디나 제3국 요원들에 의해 납치됐다거나, 다른 이유로 종적을 감췄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특히 이 사건을 대하는 터키 측의 미묘한 기류 변화도 감지된다. 가디언에 따르면,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9일 알아라비와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은 사우디 왕실의 책임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종전 주장을 뒤집었다. 터키 정부 언론 데일리 사바도 “수사 초점이 카쇼기가 생존한 채로 비행기를 타고 (사우디에) 간 것으로 옮겨졌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터키가 중요 무역 상대국인 사우디와의 관계를 의식해 사우디 왕가 책임론을 피하면서 압박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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