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지난 30년간의 베트남 외국인직접투자(FDI) 역사를 뒤돌아보고, 향후 FDI 방향을 모색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를 주관한 베트남 기획투자부(MPI)의 전ㆍ현직 장관은 물론 과거 권력 핵심이던 전ㆍ현직 총리들까지도 출동해 행사에 참여한 외국인 투자자들을 환대했다. 베트남 정부는 이날 “지난 8월 말까지 30년간 총 2만6,646개 프로젝트를 통해 3,340억달러(발표 기준)가 유입됐다”고 소개했다. 응우옌 찌 융 MPI 장관은 “FDI 덕분에 도이머이 정책 10년 만에 베트남 경제는 연 8.2%까지 성장, 사회경제 발전의 초석을 놓았다”고 평가했다.
◇M&A시장 급팽창
베트남 전쟁 후 황무지와도 같던 베트남 경제가 회생한 데에는 이처럼 FDI가 큰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외국인직접 투자의 양상이 최근 들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부지를 확보해서 공장이나 사업장을 직접 짓던(그린필드) 투자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이미 설립된 회사를 사들이는 M&A(브라운필드) 투자가 활발해지고 있다.
호찌민시 기반의 현지 M&A 자문사 ‘웰 로제타’의 홍 루(35) 대표는 “올해 8월 말 기준 신고된 FDI 244억달러 중 20%가 넘는 53억달러가 신규 설립이 아닌 기존 업체 인수”라며 “베트남 M&A 시장이 급격하게 달아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베트남 M&A 시장 거래 규모는 사상 최대로, 거래 건수가 1만3,381건에 이른다. 올해 상반기에도 액수 기준, 전년동기 대비 55% 성장하는 등 비슷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매물을 발굴해 연결하는 소규모 업체들이 부동산 중개사무소처럼 늘고 있다. 루 대표는 “호찌민시와 같은 경제도시에서 더욱 개업이 활발하다”며 “이들이 또 관련 시장을 키우는 데에도 한몫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 급팽창 배경에는 견고한 경제 성장과 함께 한국과 달리 외국 자본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우호적 인식이 한몫하고 있다. 현지 일간지의 한 경제담당 기자도 “M&A를 통해 선진 기술과 오랜 시간 축적된 노하우가 베트남에 이식되는데, 우리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코트라의 하노이 무역관 관계자는 “M&A의 경우 거래와 동시에 투자금액 100%가 도착하기 때문에 베트남 측에서도 반기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기획투자부에 따르면 외국인직접투자의 투자신고 금액 대비 실제 집행률은 55% 수준이다.
◇소비재, 태국… 시장 이끌어
외국인 투자자들의 베트남 기업 인수ㆍ합병에서 도드라지는 분야는 식음료 등 일용 소비재(FMCG)다. 연간 6~7%대의 꾸준한 경제 성장과 이에 따른 소득증가로 향후 높은 수익이 예상돼 인기가 높다. 비즈니스 정보회사 스톡스플러스(StoxPlus)의 베트남 M&A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거래금액 기준으로 57%의 M&A가 소비재 분야 기업에 집중됐다. 올해 상반기에는 그 비중이 66%로 늘었다.
이들 기업들을 사들이는 데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태국이다. 지난해 타이 비버리지(Thai Beverage)가 ‘사이공비어’로 유명한 베트남 국영 주류회사 사베코(Sabeco)의 지분 54%를 50억달러(약 5조6,000억원)에 매입한 게 대표 사례다. 현지 업계 관계자는 “베트남 인수합병 시장에서도 당분간 깨지기 힘들 기록”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 금액은 태국이 지난 10년(2007~2017년) 동안 소비재 기업 인수합병에 쓴 41억달러를 크게 능가한다.
현지 업계 관계자는 “같은 기간 한국은 2억달러에 그쳤다. CJ, 롯데에 이어 SK가 베트남 식음료 시장 1위의 마산(Masan)에 지분 투자하는 등 소비재 기업에 투자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은 제조업 중심 투자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소비재 분야 M&A 투자는 태국(41억달러)은 물론, 미국(22억달러), 일본(21억달러), 싱가포르(18억달러)에도 크게 뒤진다.
실제로 한국은 베트남의 주요 투자국 가운데 제조업 비중이 유달리 높다. 올해 1~8월 한국 투자의 71.9%가 제조업에 집중됐다. 일본은 부동산ㆍ경영분야에 대한 투자 비율이 63.3%를 차지했다. 싱가포르는 예술엔터테인먼트 분야의 투자 비중이 32.4%에 달했고 제조업 비중은 16.1%에 그쳤다. 중국은 한국과 유사하게 제조업(75.9%)에 집중됐다. 코트라 호찌민 무역관 관계자는 “한국 자본의 경우 최근 물류, 교육, 외식 분야로 투자가 활발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제조업 비중이 압도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비재, 서비스 등 한국기업들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분야에 대한 추가 발굴 및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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