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경기 안산시에서 5,900여마리 붉은불개미가 발견된 장소는 스팀청소기 업체 물류창고 컨테이너였다. 앞서 지난달 대구에서는 건설현장 조경용 석재에서 여왕개미를 포함한 붉은불개미가 발견됐다. 스팀청소기도, 석재도 모두 중국에서 들여온 제품이었다. 정부가 식물류에 대한 검역에만 주력하면서 수입 공산품 등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에 놓인 것이다. 정부는 수입 공산품 등에 대해 관련 업자들의 신고를 활성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강제할 수단조차 없는데다 부처별로 업무가 분산돼 제대로 된 대응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지금까지는 ‘운 좋게’ 붉은불개미의 확산은 없었지만, 이대로 방치한다면 앞으로는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가 크다.
환경부는 A스팀청소기 업체 물류창고 컨테이너의 제품 포장을 뜯어 일일이 확인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10일 밝혔다. 정부는 중국 광저우에서 들어온 해당 수입품이 항만(인천항터미널)에서 물류창고로 바로 이동해 그 밖의 지역으로 유출됐을 가능성은 낮다고 하지만, 문제는 이번처럼 공산품을 통해 유입될 경우 걸러낼 안전망이 사실상 없다는 데 있다. 현재까지 붉은불개미가 발견된 8차례 중 4차례는 항만 야적장 등에서 발견된 것으로 실제 어디서 유입됐는지 파악이 불가능하다. 이미 공산품을 통한 유입이 빈번하게 진행 중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현재 붉은불개미와 관련된 수입품 검역은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대부분 맡고 있다. 개미류가 섞여 들어올 가능성이 높은 코코넛 껍질이나 나왕각재 등 32개 수입 품목의 경우 컨테이너를 전수조사하고 있고, 목재 가구, 폐지, 철도 침목 등에 대해서도 병해충 전염 우려물품으로 지정해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문제는 식물류가 아닌 곳에서 속속 유입되는 붉은불개미다. 지난달 대구 아파트 건설현장의 조경용 석재에서 붉은불개미가 발견되자, 검역당국은 부랴부랴 식물 검역관의 권한으로 관세청 협조를 얻어 석재에 대해서도 검역을 하고 있다. 하지만 스팀청소기처럼 막대한 물량이 매일 수입되는 공산품은 엄두를 내기 쉽지 않다.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국정감사에서 "농수산식품 검역팀을 필요하면 공산품 검역까지 확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실무 담당자들의 반응은 다르다. 농림축산식품부 검역정책과 관계자는 “식물 검역관이 수천명이 있다 해도 모든 수입 물품을 검사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결국 수입업자나 운송업자 등의 자발적 신고에 기댈 수 밖에 없지만, 현행법 상으로는 이들에게 아무런 신고 의무도 없다. 지난해 7월 부산에서 붉은불개미가 처음으로 발견된 이후 미신고 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법이 통과된다 해도 수입 화물 소유주, 선사, 물류창고 보관업자 등 복잡한 단계별로 책임의 크기를 정하는 등 세부 지침까지 마련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가 명목상 주무부처라지만 항만은 농림축산검역본부, 산지는 산림청, 도시공원은 국토교통부, 그 외 지역은 환경부 등 복잡하게 분담된 정부의 대응 체계가 효율을 크게 떨어뜨리는 측면도 있다. 권오석 경북대 응용생명과학부 교수는 “붉은불개미가 들어온 지 1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부처별로 업무를 나누고 있다”며 “범 부처 협의체를 만들고 중국 등 병해충 고위험 지역에서 오는 물품에 대해서만이라도 검역 인력, 예산 등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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