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시기에 대해 “11월 중간 선거 이후에 회담을 갖고 싶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아이오와주에서 열리는 중간선거 지원 유세를 위해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타고 가는 도중 기자들에게 “회담 일정을 마련하기에 선거 유세로 너무 바쁘다”며 “지금 (외국으로) 떠날 수가 없다”며 이 같이 밝혔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조기 개최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결과 중간선거(11월6일) 이후 개최로 정리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폼페이오 장관과 오찬 회동을 하며 방북 결과를 보고 받았다. 이에 따라 중간선거 결과가 북미 정상회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북미 정상회담의 유동성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백악관에서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대사의 연내 사임을 밝히는 자리에서 2차 정상 회담과 관련해 “3, 4곳의 다른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며 “시기는 그다지 멀지 않을 것(won’t be too far away)”이라고 말했다.
◇ 폼페이오 방북에서 합의 못해… ‘제재 완화’ 핵심 쟁점
트럼프 대통령이 시기를 중간선거 이후로 미루면서 제시한 이유는 선거 유세 기간에 해외로 나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난달 하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친서를 받았을 당시 “2차 정상회담을 매우 빨리(quite soon) 갖게 될 것 같다”고 했던 데 비춰보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결과에 대한 실망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3, 4곳의 장소를 언급한 것도 방북 협상에서 북미가 장소 문제에 대해 의견 접근을 이루지 못한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시기를 늦추고 장소를 정하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 북미가 비핵화 의제에서 충분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폼페이오 장관 방북에도 불구, 미국이 정상회담 일정 및 비핵화 의제에 대한 합의 사항을 내놓지 못하고 이를 향후 실무 협상 과제로 돌린 것 자체가 조기 개최가 어려운 상황임을 예고한 것이다. 풍계리 핵 실험장 사찰단 방문으로 단계적 사찰의 물꼬가 트이긴 했으나 북한이 평양 남북 공동선언에서 언급한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사찰단 참관이나 조건부로 제시한 영변 핵 시설 영구 폐기에 대해선 아무런 합의가 나오지 않아 상응 조치를 둘러싸고 북미간 기 싸움이 계속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지난달 24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조기 개최 가능성이 거론되던 2차 북미 정상회담 논의에 이상 조짐이 나온 것은 북한이 리용호 외무상의 유엔 연설 등을 통해 제재 완화를 본격적으로 거론하면서부터다. 미국이 종전선언에 유연한 태도를 보이면서 영변 핵 시설 영구 폐기와 종전선언 간 빅딜 가능성이 점쳐졌으나, 북한은 관영매체 논평을 통해 “종전선언은 비핵화 조치의 흥정물이 될 수 없다”며 영변 핵 시설 폐기의 상응조치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북한은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폐기로 미국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는 만큼 그 상응조치로 종전선언을 상정하고, 영변 핵 시설 폐기 등 비핵화 조치에 대해선 제재 완화가 뒤따라야 한다는 논리를 펴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은 폼페이오 장관 방북 전부터 제재 유지 방침을 고수하며 기 싸움을 벌여 왔다. 비핵화 협상의 최대 동력인 경제 제재를 완화할 경우 비핵화 경로에서 북한이 이탈할 수 있다는 게 미국의 우려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대북 정책의 성과를 거듭 과시하면서도 “우리는 제재를 없애지 않았다. 매우 큰 제재를 갖고 있다”며 “나도 제재를 없애고 싶지만, 이를 위해선 무언가를 얻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제재 완화가 북미간 핵심 쟁점임을 드러낸 대목이다.
◇ 북미 실무협상 개시 시기 주목
미국은 종전선언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최대한 끌어내겠다는 기류 변화 조짐을 보였으나, 제재 완화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실무 협상이 또 다시 교착 상태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북미는 실무 협상을 개시하기로 했으나, 폼페이오 장관의 평양 방문 당시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최선희 외무상 부상이 상견례도 갖지 못해 협상개시 시점이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최 부상은 당시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논의하기 위해 러시아로 떠났다.
북한은 앞서 폼페이오 장관이 제안한 빈 실무 협상에 응하지 않는 등 실무 협상보다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직접 대화를 선호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조만간 조미 수뇌회담과 관련한 훌륭한 계획이 마련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힌 김 위원장으로선 허를 찔린 듯한 형국이다. 북한이 정상회담에 조급하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또 다른 메시지를 띄우며 북미 실무 협상을 빠르게 재개할 수 있지만, 중간선거 이후를 내다보면서 실무 협상을 지연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장기전 속 낙관론 유지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장기적 전망 속에서 기존의 낙관론을 유지했다. 그는 “결국에는 미국 땅에서 그리고 그들 땅에서 많은 회담을 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평양과 워싱턴을 오가는 회담 가능성도 열어놨다. 또 “북한이 정말 성공한 나라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김 위원장이 결단을 내리는 시점에는 그가 무언가 정말로 굉장한 극적인 장면을 풀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언급은 그간 여러 차례 얘기해왔던 ‘서두르지 않겠다’는 장기전의 연장선이다. 당장의 비핵화 성과가 없다는 여론의 비판을 피하면서 제재를 유지하는 한 급한 것은 북한이라는 판단도 깔린 것이다.
◇중간선거 공화당 패배 시 변수 복잡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에 더욱 힘이 붙게 된다. 북한 문제 역시 차기 대선의 성과로 내세우기 위해 그의 언급대로 여러 차례 북미 회담을 이어가면서 느리더라도 조금씩 치적을 쌓아갈 수 있다.
하지만 공화당이 패배할 경우 상황은 복잡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국내 정치 사안에 쫓기다 보면 북미 대화에 대한 관심도가 현저히 떨어질 수 있다. 반면 선거 패배에 대한 국면 전환을 위해 북미 정상회담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면 수시로 청문회 등을 개최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마다 견제에 나설 것은 확실하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확실히 검증되지 않는 한, 의회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접근에 강력한 비토 세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북한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기반을 잃고 있다고 판단하면, 중국 및 러시아와의 협력에 주력하면서 미국과의 협상에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자칫하면 2차 정상회담이 물 건너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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