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박사이트 ‘강남바둑이’ 인출담당 문모(45)씨는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수사기관이 낌새를 채지 못하게 ‘계좌당 1,000만원 이상 모이면 바로 출금’하는 게 조직의 철칙. 혹시 모를 추적을 피하기 위해 매번 다른 현금인출기(ATM)를 찾아 돈을 뽑은 뒤 잽싸게 귀환하는 게 문씨에게 맡겨진 중책이다.
8월 22일, 그날도 문씨는 어김없이 낯선 ATM를 찾아 헤매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카페골목에 닿았다. 번화가인 데다 점심시간이라 사람들 틈으로 숨기 좋은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게다가 그날 돈을 빼야 하는 계좌의 은행이 연달아 붙어있으니 ‘오늘도 무사히’에 ‘운수 좋은 날’이기까지 했다. 문씨는 이 은행, 저 은행 옮겨가며 ATM에서 10분 넘게 현금을 뽑았다.
그 뒷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5명이 있었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은행 근처 식당 앞에서 줄을 서 있던 방배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수사관들이다. 이들이 슬그머니 다가가 경찰임을 밝히고 불심 검문하자 문씨는 당황한 나머지 손에 쥐고 있던 5만원짜리 돈뭉치 3,600만원을 떨어뜨렸다. 문씨는 그 자리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문씨가 직선거리로 200m 떨어진 경찰서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한 까닭에 공범들도 줄줄이 붙잡혔다.
방배경찰서는 지난해 5월부터 올해 8월까지 불법 도박사이트를 만든 운영자와 대포통장 모집책, 도박 참여자 등 27여명을 붙잡았다고 10일 밝혔다. 이 중 자금관리책 박모(45)씨와 문씨는 도박공간개설죄 등 혐의로 구속됐다.
조사 결과 문씨 일당은 610억원대 판돈으로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면서 하루 평균 2,000여만원씩 총 128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경기 수원시 동네 선후배 사이로 일본 도쿄에 서버를 두고, 관리는 중국에서 했다. 신분 노출을 피하기 위해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메신저 ‘위챗’을 이용했다. 경찰은 중국으로 달아난 총책 이모(41)씨 등을 쫓고 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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