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국제공항 관제탑이 상시적인 시야 방해 상태 속에서 항공기의 이착륙이나 활주로 내 이동을 통제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레이더 등 일부 관제 장비도 내구연한 경과로 실질적 기능을 못하고 있는 사실도 드러났다. 한 해 운항편수가 16만7,000여 건, 이용객은 3,000만 명에 육박하는 국내 3위 공항이 부실한 시설을 방치하며 대형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9일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제주공항 관제시설 문제’ 자료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제주공항 관제탑 기둥 2개가 ‘메인 활주로-주요 유도로’와 ‘메인 활주로-보조 활주로’ 교차지점의 육안 감시를 방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시야 방해는 비행기들의 활주로 침범 사례를 야기하는 등 대형 사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실제로 2013년 9월 제주공항 관제탑은 기둥에 시야가 가려져 메인 활주로를 통해 이륙하려는 비행기를 발견하지 못한 상황에서 다른 비행기의 착륙 허가를 내린 바 있다. 다행히 착륙을 시도하던 비행기가 이 사실을 발견하고 긴급히 회피 비행을 해 충돌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으나, 이후에도 관제탑 시야 방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방치됐다.
지난해 9월에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제주공항 관제탑은 동서 활주로에 진입해 대기하던 민간 항공기에 이륙 허가를 내렸고 해당 비행기는 빠른 속도로 메인 활주로를 이동했다. 그러나 같은 시각 남북 활주로에는 해군 대잠초계기가 장비 점검을 받기 위해 메인 활주로와의 교차지점으로 이동 중이었다. 관제탑 기둥이 가린 사각지대에 해군 초계기가 들어간 것을 관제사가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이번에도 두 비행기가 충돌하기 직전 민간 항공기 기장이 급제동을 하면서 대형 참사는 피했지만 이 과정에서 민간 항공기의 타이어가 파손되면서 제주공항 활주로는 1시간가량 폐쇄됐다. 당시 사고로 여객기 45편이 지연 운항되면서 1만 명이 넘는 승객이 불편을 겪었다.
제주공항 관제 장비의 노후화도 심각한 수준이다. 2003년 설치된 제주공항의 지상감시 레이더(ASDE)는 내구연한(2017년 11월)을 초과해 상시적인 오류가 발생하고 있었으며, 2007년에 장착된 레이더자료 자동처리시스템(ARTS)도 이미 예비장비가 단종돼 부품 수급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음성통신 제어장치와 주파수 통신장비의 노후화는 현장 혼선을 불러오기도 했다. 관제시설 사이의 통신 통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음성통신 제어장치(VCCSㆍ내구연한 2017년 6월)는 노후화로 인해 2015년 12월 관제 통신이 중단되는 사태를 초래했으며, 관제사와 항공기 기장 사이의 교신 역할을 하는 주파수 통신장비 VHFㆍUHF 수신기(내구연한 2019년 6월)는 최근까지도 혼선과 잡음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파악한 국토교통부는 지난 5월 제주공항 관제탑 신축 예산(212억원)과 관제 장비 교체 예산(338억원)을 각각 요청한 상태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시급성이 떨어진다”며 관련 예산 편성을 거부하고 있다. 박홍근 의원은 “제주공항은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내국인만 992만명 넘게 이용한 국내 최대 공항 중 하나”라며 “이미 대형 사고의 전조가 일어난 만큼 하루 빨리 관제탑을 신축하고 문제 장비를 교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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