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을 출발한 부산행 KTX 열차가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열차 뒤편에서 한 승객이 비틀비틀 걸어와 자리에 앉는다. 그 승객은 이내 팔다리를 뒤틀며 몸부림을 치더니 흉측한 좀비로 변해 버린다.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그르렁’ 신음을 내며 좌석 옆을 지나쳐 가는 좀비. ‘휴~’ 한숨을 돌리는 찰나, 잡아먹을 듯이 이빨을 드러낸 좀비의 얼굴이 눈앞에 들이닥친다.
“으악!” “무서워!”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해운대구 벡스코 전시장에서 6~9일 열린 아시아필름마켓에선 나흘 내내 비명이 들려 왔다. 투자배급사 NEW 부스에서 ‘부산행 VR(가상현실)’을 체험하는 관람객들이 깜짝 놀라 내지르는 소리였다. 황급히 장비를 벗어버리고는 민망해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이들도 있었다. 소문이 퍼지면서 한때 부스 앞에 대기 줄이 늘어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처음 공개된 ‘부산행 VR’은 NEW의 글로벌 판권유통사업부 콘텐츠판다가 싱가포르 특수효과 영상 제작사 비비드쓰리와 제작한 VR투어쇼 중 일부를 담은 데모 버전이다. 열차 안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 도입부 장면을 지나 다른 객차로 건너가면 바닥에 시체가 즐비하고 눈앞에서 승무원이 좀비에 물린다. 열차가 충돌, 탈선하면서 하늘로 치솟은 몸이 땅에 곤두박질치기도 한다. 이번에는 공간 제약 탓에 체험 부스를 간이로 꾸몄지만, 탑승 기구에 앉으면 기차의 승차감과 속도감까지 느낄 수 있다.
전체 버전은 3개 구역이다. 1구역은 좀비의 공격에 황폐화된 서울역, 2구역은 좀비가 창궐한 열차 안, 3구역은 좀비와 직접 대결하는 게임 공간이다. VR도 영화 줄거리를 따라서 전개되는 셈이다. 하이라이트는 3구역이다. 관람객이 마동석에 빙의할 수 있다. 조끼 형태 장비와 기구까지 장착하면, 직접 걸어 다니면서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좀비를 때려잡을 수 있다. 좀비의 공격은 조끼의 진동으로 타격감을 구현한다. 영화 마지막 터널 장면처럼 군인들과 함께 총을 들고 좀비를 쏠 수도 있다.
콘텐츠판다 관계자는 “영화제를 찾은 해외 관계자들이 ‘부산행 VR’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며 “올해 말부터 ‘부산행 VR’을 전 세계에서 순회 상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VR 체험관 자체가 인기이기도 하다. 영화의 전당에 마련된 VR 체험관에선 부스마다 장비를 착용한 관람객들이 상하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360도 3차원 공간을 만끽했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베스트 VR 경험상을 수상한 채수응 감독의 ‘버디 VR’을 비롯해 전 세계 VR 40편이 상영된다.
10분짜리 VR 단편을 한번에 4편 볼 수 있는 묶음상영관은 예약제로 운영되는데 10일까지 대부분 시간대가 예약 마감됐다. 단편 상영관도 사람이 많이 몰린 주말엔 1시간 넘게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였다. VR이 영화제의 열기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VR 체험관 관계자는 “VR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온 관람객도 많았다”며 “웹툰을 기반으로 제작된 ‘조의 영역’과 ‘살려주세요’처럼 관람객에 이미 친숙한 콘텐츠가 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글ㆍ사진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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