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진단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서울 강남 등지의 부유층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고 한다. 필자의 조카도 강남구 대치동에 산다. 수능을 앞둔 입시생이다. 조카가 얼마 전 같은 반 친구들이 공진단을 먹는 것을 보고 어머니에게 “이모부가 한의사인데 나는 왜 그걸 구해주지 않느냐?”고 ‘항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진단은 제대로 알고 먹어야 한다. 보약인 줄로 알고 먹는 사람들이 많다. 과연 그럴까?
중학생 시절 고향 창녕에 갔을 때 유림 학자셨던 증조부님은 사랑채 벽장에서 단지를 꺼내 증손주들에게 박하사탕을 나눠주시곤 했다. 옆에 까만 단지가 하나 있었는데 난 늘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궁금했다. 하루는 증조부님이 그 속에서 까만 꿀 같은 것을 숟가락으로 떠 드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할아버지 그게 뭐예요?”
나의 질문에 증조부님은 “나의 건강 되찾으라고 네 아비가 만들어준 보약이야”라고 말했다. 나는 보약은 달여 먹는 탕약으로만 알고 있었다. 당시에는 떠먹는 보약이 신기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할아버지는 여든이 넘은 고령에 결핵에 걸렸다.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할 정도로 병이 깊었다. 하지만 한약으로 병이 나았고, 그 뒤로 아버지가 매일 한 숟가락씩 드시라고 경옥고(瓊玉膏)라는 젤 형태의 보약을 만들어드린 것이었다. 아버지는 대구시한약협회 회장을 지내고 대구 약전골목 약령시를 부활시킨 공로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을 만큼 한의학을 아꼈다.
증조부님은 아버지가 만들어드린 경옥고 덕분인지 구순에 접어들어 오히려 전보다 건강이 좋아져서 별세하실 때까지 직접 밭을 일구셨다.
공진단을 이런 경옥고처럼 보약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은 치료약에 훨씬 가깝다. 공진단(拱辰丹)은 ‘황제에게 공손하게 올린다’라는 뜻의 이름으로 몽골제국의 명의 위역림(危亦林, 1277~1347)이 원(元) 황제의 건강을 위해 만들어 올린 알약이다. 공진단의 탄생 배경은 이 약이 강남 등지에서 인기가 치솟는 이유를 설명한다.
몽골제국은 로마제국보다 존속기간은 짧았지만, 인류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에다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 교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최강의 나라였다. 이런 나라의 황제나 귀족들이 잘 먹고 잘 살았던 것은 당연지사. 실제로 한때 세계를 주름잡았던 로마제국의 이태리나 프랑스 스페인 등은 모두 찬란한 요리 왕국들이다.
유목민인 몽골인의 육식에다 농경민족인 한족의 채식 문화가 결합한 원나라의 궁중요리는 훗날 청나라에 계승되어 ‘만한전석(滿漢全席)’이라는 최고의 식문화를 탄생시켰다. ‘청요리’라는 말도 다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게다가 몽골 황제는 늘 전 세계를 통치해야 하는 긴장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잘 먹는 반면에 스트레스가 많아 병이 생긴다. 현대인들도 어느 시대보다 잘 먹지만, 스트레스 독소가 쌓여서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비만, 만성두통, 심장질환, 신경우울증 등 대사장애 질환이 오기 쉽다.
공진단은 막힌 곳을 뚫어주는 사향을 주재료로 주로 쓴다. 녹용, 당귀, 산수유 등을 배합해 청혈해독(淸血解毒)해주는 독소 제거 치료약에 가깝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에게 적합한 약일 수밖에 없고 수능을 앞둔 긴장감에 시달리는 수험생의 학습능력을 높이는 데도 큰 효과가 있는 것이다. 최근 여러 학술논문을 통해 기억력과 학습능력증진의 효과가 입증되고 있는 공진단이 이제는 단순히 보약으로만 오해받지 않기를 바란다.
이승렬 한의학 박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