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리우 佛 기메 국립동양박물관장
손인숙 ‘실 그림’ 작가와 재회
“와, 만약에 이브 생 로랑이 이 그림을 봤더라면…”
소피 마카리우 프랑스 기메 국립동양박물관장이 5년 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손인숙(68) 작가의 아틀리에를 방문해 손 작가의 ‘미인도’를 본 감동을 회고했다. 손 작가의 자수기법으로 재탄생한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는 프랑스 유명 패션디자이너도 눈이 번쩍 뜨일 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당시 한ㆍ불 수교 130주년(2016년)을 앞두고 전시를 고민하던 마카리우 관장은 곧장 손 작가에게 전시를 제안했다. 손 작가의 작품 250여점은 2015년 말부터 2016년까지 6개월간 파리 기메 국립동양박물관에서 전시됐다.
마카리우 관장이 5일 다시 손 작가의 아틀리에를 찾았다. 손 작가는 활옷, 주머니, 보자기 등 자신의 작품 21점을 박물관에 기증키로 했다. 기메 국립동양박물관은 아시아 문화권의 고미술품 등을 유럽에서 가장 많이 소장한 곳으로 1889년 설립됐다. 한국 작가로는 손 작가 외에 이배ㆍ김종학 작가 등도 전시를 했다.
손 작가는 10세 때 시작한 자수로 작품활동을 해왔다. 손바느질에 머물러 있던 자수를 회화, 조각, 의복, 가구, 건축 등 다양한 분야와 접목해 작품세계를 넓혀왔다. 실의 색깔, 질감, 굵기 등을 이용해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이면서 ‘실 그림’이라는 새로운 예술 분야를 개척했다.
이날 마카리우 관장은 “처음 학예사의 관람 제안을 받았을 때 바느질이라고 생각해 큰 기대를 안 했다”며 “하지만 아틀리에에 들어서는 순간, 눈부신 아름다움에 할말을 잃었었다”고 격찬했다. 특히 자수로 그린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앞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는 “물감을 사용하지 않고 실만으로 빛과 명암을 표현한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다”며 “불화, 문양, 의복 등 빛 바랜 전통에 빛을 입혀 현대적인 작품으로 재탄생했다”고 평가했다. 손 작가의 미인도에는 실제 사람의 머리카락을 실처럼 사용해 생동감을 더했고, 전통색상인 오방색에서 탈피한 다양한 색상의 실을 굵기와 질감 등을 달리해 한복을 표현했다. 마카리우 관장은 “장롱, 보자기 등 다양한 작품을 전시했었지만, ‘미인도’의 인기가 최고였다”며 “유럽인에게 한복의 우아한 실루엣과 비단의 고운 색감을 알리는 데 손 작가가 큰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사계절을 표현한 거대한 10폭짜리 병풍(‘삶의 대화’) 앞에서 마카리우 관장은 “어떤 인상주의 화가보다도 빛과 색깔을 풍부하게 표현했다”고 평가했다. 손 작가의 아틀리에에는 ‘미인도’와 ‘삶의 대화’뿐 아니라 집 주변의 풍경을 실로 표현한 작품, 장롱과 서랍장 등 가구의 표면을 실로 장식한 작품 등 실로 그린 작품 수백 점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마카리우 관장은 최근 해외 한류 열풍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그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 문화가 사회관계서비스(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며 “한국 문화에 녹아 있는 현대적인 감각들이 사람들의 공감대를 키우면서 열광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문화적 인연도 깊다. 그는 2016년 9월 한 프랑스 개인수집가가 기증 의사를 밝힌 경남 고성 옥천사 시왕도(十王圖) 10폭 중 한 폭인 제2초강대왕도(第二初江大王圖)를 한국으로 돌려보냈다. 작품은 프랑스인이 1981년 인사동 고미술상에 사서 자국으로 가져가 35년간 보관해왔던 것이다. 그가 기증 의사를 비쳤고, 작품의 수집경로를 조사한 마카리우 관장이 이를 우리 문화재청에 알리면서 그림 존재가 확인됐다. 그는 이를 자신의 재임기간 중 가장 뿌듯한 일로 꼽았다. 그는 “도난당하거나 밀수한 작품은 기증받지 못한다”며 “작품의 수집 경로를 확인한 뒤 제자리를 찾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기수 예원실그림문화재단 이사장(전 고려대 총장)은 “이번 손 작가의 작품 기증으로 유럽에 현대적인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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