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로봇공학 교육과정을 통째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한다. 우리나라 기업이 만든 로봇 관련 교구나 교육 프로그램이 수출된 적은 있지만, 대학의 로봇 커리큘럼이 해외로 진출하는 건 처음이다.
KAIST는 2020년 6월 개교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모하마드 빈 살만 대학(MBSC)의 로봇공학 학사과정 설치를 지원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오는 15일 체결할 계획이라고 8일 밝혔다. 이를 위해 MBSC 관계자들이 12일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MBSC는 사우디 왕세자 모하마드 빈 살만이 미래의 공학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로 설립하고 있는 기술 중심 대학이다. 일반 대학 학사과정이 4년인 것과 달리 MBSC는 5년이다. 마지막 1년 동안에는 모든 학생이 사이버 보안, 인공지능(AI), 컴퓨터 구조, 디지털 로직 같은 첨단기술을 익히게 된다.
KAIST에 따르면 MBSC는 이를 위한 최고 수준의 교육과정을 만들기 위해 해외 유수 대학의 공학 커리큘럼을 분석했다. 그 결과 미국 스탠퍼드대에 대학 전체적인 운영 시스템을, 카네기멜런대에 사이버 보안 분야 교육과정을 설계해 달라고 의뢰했다. 이어 MBSC는 지난 6월 신성철 KAIST 총장에게 연락해 로봇공학 교육과정 설계를 요청했다.
KAIST는 세계 수준의 로봇 기술을 바탕으로 국내외 연구와 관련 산업을 선도해왔다. KAIST가 개발한 휴머노이드(인간을 닮은 로봇) ‘휴보(HUBO)’는 2015년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로보틱스 챌린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국제로봇올림피아드(1999년)와 인공지능 월드컵 국제대회(2018년)를 처음 개최한 것도 KAIST다. 김종환 KAIST 공과대학장은 “MBSC로부터 세계 어느 대학보다 다양하고 경쟁력 있는 로봇 연구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스탠퍼드대나 카네기멜런대 같은 명문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할 기회”라고 말했다.
KAIST는 자체 로봇공학 교육과정을 사우디 현지 실정에 맞도록 재구성해 MBSC에 설치하고, 최첨단 로봇 실험실 구축과 운영도 지원하게 된다. 실험실 기자재를 국산 제품으로 구성하겠다는 계획인 만큼 관련 국내 기업들의 사우디 시장 진출 기회도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KAIST는 2013년 중국 충칭(重慶)이공대와 계약을 맺고 이듬해 전자정보공학과와 컴퓨터과학기술공학과를 개설해 운영 노하우를 수출한 바 있다. 이들 학과의 수업료 수익으로 KAIST는 지난해에만 약 10억원을 벌어들였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수주 당시 KAIST는 현지 칼리파대의 원자력공학과 개설과 교과과정 개발을 지원하기도 했다. 김 학장은 “미래 산업으로 주목받는 로봇 분야의 대학 커리큘럼이 수출되는 건 처음”이라며 “MOU 이후 지원 일정과 수출 규모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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