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 핵, 종전선언 교환 가능성에
북미 마음 잡을 ‘추가 카드’ 관심
미국선 핵무기 일부 우선 조치 선호
북한은 남북경협 등 제재 예외 원해
북미 간 빅딜이 이뤄졌다면
비건, 최선희 접촉 빨라질 수도
7월 초 세 번째 방북 뒤 석 달여 만에 들어간 평양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만 하루도 머물지 않은 건 북측과 만나 할 이야기가 그리 많지 않아서였을 공산이 크다. 부가적 타결 없이도 ‘빈손 방북’을 면할 수 있는 합의 성과가 이미 북미 고위급회담 전 물밑 접촉을 통해 담보돼 있었으리라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 추측이다. 때문에 관건은 지금껏 테이블 위로 올라오지 않은 북한의 추가 비핵화 조치 카드가 대북 제재망을 꽉 조인 채 요지부동인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내용이었는지 여부다.
7일 회담에서 북미가 실제 타결을 시도한 교환 대상은 ‘플러스 알파’(+α)였을 거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언급으로 가능성이 커진 대북 체제 안전보장 조치 종전(終戰)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용의가 표명된 북한의 비핵화 조치 영변 핵시설 폐기가 기본적으로 교환될 카드라는 전제에서다.
일단 북한이 꺼냈을 히든 카드로는 화성-14, 15형 등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일부 해체나 핵탄두ㆍ핵물질 폐기ㆍ반출처럼 미 입장에서 체감도가 높을 핵 위협의 포기가 거론된다. ICBMㆍ핵탄두ㆍ핵물질의 제거는 완전한 핵시설ㆍ핵물질ㆍ핵무기 목록 신고와 더불어 미국이 협상 초기부터 줄곧 북한에 요구해 온 ‘프런트 로딩’(중대 초기 이행 조치) 대상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달 인터뷰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거래 대상으로) ‘특정 시설과 무기 시스템’을 지칭한 만큼 영변 핵시설과 핵무기 일부가 우선 협상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미 국무부 등이 포함된 국제검증단이 참여한다면 북한이 거부하는 핵무기 전체 반출 없이 북한 내 핵탄두 해체와 핵물질 분리ㆍ반출이 가능하다”고 했다.
물론 종전선언만 얻어낼 목적으로 북한이 미 정부에 초유의 성과들을 안겨줬을 개연성은 크지 않다. 미측의 핵 목록 신고 요구가 워낙 드세다 보니 이를 우회해 미국으로부터 종전선언 동의를 유도하고 아울러 플러스 알파까지 받아낼 요량으로 내놓은 게 영변 핵시설 폐기를 포함한 현존 핵 위협 축소일 수 있다는 얘기다. 완전 신고 유보를 위해 핵 능력 전부는 아니지만 핵심 중 핵심인 영변 핵물질 생산 시설 전반의 검증(신고ㆍ사찰)을 용인하겠다고 제안했다면 그것도 고육책이다.
올 4월 ‘경제 건설 총력 집중’으로 전략노선을 바꾼 사실이나 최근 부쩍 노골화한 요구로 미뤄볼 때 북한의 플러스 알파 요구는 대북 제재 해제나 완화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여전히 제재를 가장 효과적인 비핵화 지렛대로 여기는 미국 기류에 비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 해제 단계까지 합의를 진전시키기는 힘들었겠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신뢰 제공 차원에서 독자 제재 일부를 해제하거나 제재 예외 허용으로 남북 경제협력의 길을 터줄 가능성은 작지 않다. 정부 소식통은 “애초 대북 제재에 해당하지 않는 인도적 대북 지원 및 금강산 관광과 함께 개성공단 등 남북 경협을 풀어주기 위해 민족 내부 거래라는 명분을 미국이 동원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북미가 비핵화 과정에 들어가려고 협상 교착 요인을 제거하는 식의 실용적 합의를 빅딜 대신 도출했을지 모른다는 전망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당장 하면 북미 모두에게 독이 될 핵 신고와, 중국 참여 등 문제를 안고 있는 종전선언, 둘 다 하지 않는 식으로 문턱을 낮춘 뒤 곧장 협의체를 가동해 평화협정 논의에 들어가는 것도 합리적 대안”이라고 조언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폼페이오 장관이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한 직후 서면 브리핑에서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이 취하게 될 비핵화 조치들과 미 정부의 참관 문제 등에 대한 협의가 있었고 미국이 취할 상응 조치에 관해서도 논의가 있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외교 소식통은 “빅딜이 이뤄졌다면 이달 내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전제로 시기ㆍ장소 관련 실무를 논의하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간 접촉이 예상보다 빨리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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