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 정치권을 달군 비인가 예산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세간의 관전평은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의 판정패라는 쪽이다. 심 의원이 공격수,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수비수로 나선 2일 국회 대정부질문이 분수령이었던 듯하다.
“예산 집행 지침에는 밤 11시 이후나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에는 쓸 수 없고 술집이나 이자카야, 사우나 등에서는 업무추진비를 쓸 수 없다”며 파고드는 심 의원에 맞서 김 부총리는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심지어 심 의원이 국회부의장 시절 주말에 업무추진비를 쓴 사례가 있다며 역공도 마다하지 않았다. 기재부가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의 적절성을 감사원이 살펴봐달라며 ‘셀프 감사 청구’ 배수진을 친 효과였을까. 심 의원은 김 부총리의 ‘빗장 수비’를 뚫을 결정적 한방을 내놓지 못했다.
물론 아직 자료 유출의 불법성을 따지는 일이 남아 있다. 심 의원은 기재부에서 부여 받은 권한으로 재정정보 시스템에 접속한 뒤 ‘백 스페이스’ 두 번 눌러 예산정보를 내려 받은 게 무슨 잘못이냐고 주장할 테고, 기재부는 심 의원 보좌진이 불법이라는 인식 없이 비인가 정보를 내려 받았을 리 없다고 반박할 것이다. 허술한 재정정보 시스템을 방치한 책임에 대한 반성 없이 야당 의원 사무실 압수수색부터 한 처사가 곱게 보이진 않지만, 시시비비는 검찰과 법원이 가릴 테니 차분히 지켜보면 될 일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정부가 대량으로 유출됐다고 펄쩍 뛰는 비인가 예산정보는 정말 공개되면 안 되는 내용인가. 심 의원이 지금까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청와대 직원이 늦은 밤 회의가 끝나 이자카야 등에서 주린 배를 채웠다는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다. 800만건 이상(검찰 추산)이라는 자료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대체로 비슷할 것이다. 이런 자료가 왜 비공개 대상이어야 하는지 궁금하다. 그런데도 정부 태도는 안하무인이다. ‘카드사 산업분류표가 잘못됐다’ ‘국민연금공단이 운영하는 과천의 매점은 원래 골프장업으로 표기된다’고 반박하고, 이런 것도 모르면서 세상 시끄럽게 하냐며 되레 핀잔을 준다. 어디선가 한번쯤 본 풍경 아닌가. 정보공개 청구가 있어야 마지못해 내주는 관료주의 행정의 높은 벽 말이다.
어느 조직이든 예산을 감사하려면 집행내역 자료와 관련증빙서류가 필수 자료다. 국회가 감시하는 공공기관 정보도 마찬가지다. 공개가 원칙이고, 국가안보ㆍ국방ㆍ통일ㆍ외교 등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거나, 국민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의 보호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정보 등만 예외로 둔다.(공공기관 정보공개법 제9조 1항) 지방자치단체가 업무추진비 집행내역을 정기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이런 취지에서다. 정보공개운동 진영 전문가들은 청와대가 애초에 업무추진비 자료에 문을 걸어 잠그지 않았으면 이번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국민의 알 권리는 원래 진보 진영 의제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에 의구심을 제기한 일본 산케이신문 지국장의 명예훼손 혐의 기소를 진보 진영이 비판한 것은 ‘위축 효과’로 인한 알 권리 침해를 우려해서였다. 탄핵 촛불집회에 불을 댕긴 것도 한 종편 방송사가 주인 허락 없이 가져온 태블릿PC의 공개였다. 그렇게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서 알 권리가 행정 효율주의의 뒷전에 놓인 형국이다. 심지어 여당은 국가기밀 탈취 사건이라고 부르고, 폭로 내용에 중대한 공익성이 없다고 깎아 내리거나 백 스페이스 두 번도 해킹은 해킹이라고 주장한다.
청와대 입장에선 밤낮없이 일하는데 밤늦게 업무추진비 카드를 썼다는 이유로 술자리가 아니라고 일일이 해명해야 한다면 울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정보에의 접근이 충분히 보장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알 권리가 표현의 자유와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마침 입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업무추진비 내역을 공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이제 청와대가 답할 차례다.
김영화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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