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대전월드컵경기장에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관중 여러분은 가방이나 소지품으로 머리를 보호해 주십시오.”
지난 6일 대전과 아산의 2018 K리그2(2부 리그) 31라운드 경기가 열린 대전월드컵경기장. 두 팀의 치열했던 90분 승부가 2-1 대전의 승리로 끝난 직후 경기장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지진대피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경기장 내 관람객들은 동요하지 말고, 여진이 멈추고 대피 지시가 있을 때까지 대기해 주시기 바란다”는 안내 이후 “여진이 발생하면서 경기장 건물 일부에 균열이 발생했다”는 설명이 이어지자 경기장 동쪽 관중석(E석) 한 켠 지붕 위에서 구조물의 일부처럼 보이는 물체가 떨어졌고, 곧장 119소방ㆍ구조차량이 출동, 경기장에 진입해 부상자로 보이는 관중을 신속히 구조했다.
이날 지진대피 상황은 대전광역시 동남쪽 80㎞ 부근에서 진도 6.5의 초진이 발생한 10여분 뒤 진도 5.0규모의 여진이 발생했다는 가정 아래 진행된 모의 훈련이었다. 재작년 경북 경주시(진도 5.8)에 이어 지난해 11월 경북 포항시에서도 진도 5.4의 강진이 발생하는 등 대한민국 전역이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란 인식이 확산되면서, 혹시 모를 재난에 대비해 이번 훈련을 실시했다는 게 훈련을 주관한 프로스포츠협회 측 설명이다. 협회에 따르면 경기가 벌어진 경기장에서 실제 관람객이 직접 참여한 지진대피훈련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협회 관계자 6명 외에도 재난안전요원 27명과 경찰(8명), 소방(6명), 군인(10명), 스포츠안전재단 직원(5명) 등이 대피훈련에 참여해 각자의 역할을 분담했다. 재난 대비가 철저한 일본의 프로축구에서도 관람객이 참여한 지진대피훈련이 시행된 적은 이제껏 없었다고 한다.

관중들의 모의훈련 참여는 꽤 적극적이었다. 구단은 경기 2, 3주 전부터 인쇄물과 장내 방송 등으로 관중들의 훈련 참여를 독려하되 강제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경기 후 전체관중(3,291명)의 3분의1 수준인 1,050명 정도가 경기장에 남아 훈련 과정을 지켜보거나 직접 참여했다. 훈련상황은 “여진이 멈췄으니 경기장 밖으로 대피해 달라”는 방송 뒤 군인ㆍ경찰 및 안내요원들 지시에 따라 관중들이 차분히 경기장 밖 남문 광장으로 집결하면서 종료됐다. 이날 9세 쌍둥이 아들을 데리고 경기장을 찾은 이재신(44)씨는 “자연재난 시 대피요령 숙지는 생명과도 직결된 일이라 아이들과 끝까지 참여했다”며 “가능한 모든 구단이 실시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들 준용(9)군은 “이제 공공장소에서 지진이 나도 당황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고 했다.


실제 경기장에서의 지진피해 위험은 우리 곁에 항상 도사리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만 해도 지난달 6일 오전 3시쯤 홋카이도 삿포로 남동쪽 66㎞ 지역에서 난 진도 6.7의 지진 때문에 이튿날 삿포로돔에서 치르기로 했던 칠레와 A매치 평가전을 급히 취소했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을 치르기 위해 최근 가시마 원정을 다녀온 K리그1 수원 삼성 선수단도 지난 4일 오전 숙소 인근에서 발생한 진도 4.6규모 지진에 황급히 대피한 경험이 있다. “경기 시점에 발생한 지진이라면 아찔했을 것”이라는 게 수원 관계자의 얘기다.
상황이 이런데도 프로구단들의 참여 의지가 부족했던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협회는 지난 6월 총 32개 프로축구ㆍ야구단에 공문을 보내 지진대피훈련 참가 신청을 받았지만 단 한 팀도 신청하지 않았고, 2차 공모에서 대전만 신청해 이번 훈련을 실시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체육기관과 구단이 선제적으로 나서 재난대피훈련을 실시한 것은 반길 만 한 일”이라면서도 “다만 구단이 직접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할 훈련 비용을 협회가 전액 부담하는 데도 한 팀만 신청한 점은 아쉽다”고 했다. 공 교수는 “특히 최근 2년 사이 큰 지진이 일어난 영남권 연고 구단들은 반드시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전=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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