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을 비판한 사우디 유명 언론인 자말 카쇼기(59)가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 영사관에 들어간 후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고 터키 경찰이 밝혔다. 중동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온건 개혁을 내세운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실제로는 반체제 인사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강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터키 경찰 관계자는 6일(현지시간) 외신에 “10월 2일 실종된 카쇼기가 사우디 영사관 내에서 살해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와 아랍권 방송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터키 경찰당국은 사우디에서 이스탄불로 간 ‘15인조’가 카쇼기를 계획적으로 살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15인조는 카쇼기가 실종된 2일 비행기 2개 편으로 이스탄불에 도착했으며, 카쇼기가 영사관을 방문했을 때 영사관에 있었고, 곧바로 이스탄불을 떠났다. 카쇼기의 한 지인은 DPA통신에 “카쇼기가 살해당한 후 시신이 토막 났다고 경찰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카쇼기 또한 자신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예감한 것으로 보인다. WP에 따르면 그는 2일 약혼자 하티체 쳉기즈와의 결혼을 인정하는 공식 문서를 받기 위해 영사관을 방문했는데, 영사관에 들어가기 직전 쳉기즈에게 자신의 휴대전화를 맡기고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터키 집권당 정치인에게 전화하라”는 말을 남겼다. 쳉기즈는 4시간을 기다린 후 연락이 없자 터키 경찰에 신고했다.
사우디 영사관은 카쇼기가 바로 영사관을 떠났다며 살해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영사관 관계자는 사우디 국영 SPA통신에 “근거 없는 의혹 제기를 강력히 비판한다”고 밝혔다. 앞서 카쇼기의 납치설이 돌았을 때는 모하메드 알 오타이비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가 앞서 로이터통신 기자를 영사관 내로 불러들여 건물 내부를 안내하기도 했다.
언론에 공개된 터키 경찰의 입장은 공식적으로 발표된 조사 결과는 아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7일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라면서도 보도를 염두에 둔 듯 카쇼기의 신변에 문제가 없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보좌역인 야신 아크타이 정의개발당 의원은 “사우디 정부 관료가 사건에 개입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카쇼기는 사우디 관영 영자언론 아랍뉴스의 부편집장과 친개혁 성향 일간지 알 와탄의 편집장을 역임한 베테랑 언론인이다. 오사마 빈 라덴과 여러 차례 인터뷰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며 사우디 왕가와도 밀접한 관계였다. 그러나 지난해 모하메드 왕세자가 차기 왕위계승자로 임명된 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다며 9월부터 미국에 머물러 왔다. 모하메드 왕세자가 지난해 부패 혐의로 강제 구금한 ‘중동의 워런 버핏’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가 그의 후원자였다.
최근 카쇼기는 WP 주요 칼럼니스트 중 한 명으로 활동하며, 최근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과 여성 인권운동가 체포 등을 집중적으로 비판해 왔다. 이 때문에 WP는 “사우디 핵심 지배층에 가까웠던 인사가 미국에서 반체제 발언을 계속한 것은 모하메드 왕세자에게 중대한 위협으로 비쳤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제기구와 언론인들은 모하메드 왕세자가 겉으로는 ‘비전 2030’이라 불리는 개혁 정책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정부 비판자를 억압하는 역설적 상황을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국제 언론인 권익단체인 언론인보호위원회(CPJ)의 중동ㆍ북아프리카 담당 셰리프 만수르는 “카쇼기 사건은 사우디 정부가 그간 비판적 언론인을 조용히 구금해 온 것을 고려하면 중대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영국 BBC방송 출신 중동 전문가 빌 로는 알자지라 기고에서 “카쇼기는 모하메드 왕세자의 비전 2030을 지지하는 동지일 수 있었지만 왕세자는 그를 오히려 적으로 취급했다”라며 “강력한 지도자가 아닌 치명적 약점을 지닌 권력자의 불안감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사설 편집자 프레드 히아트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그를 살해한 것은) 극악무도한 행위”라며 “그가 살아있기를 바라지만 자말은 헌신적이고 용감한 언론인이었다. 자신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인간의 존엄성ㆍ자유에 대한 깊은 신념을 갖고 언론 활동을 해 왔다”라고 밝혔다.
카쇼기가 터키 내에서 살해되면서 터키와 사우디 양국 관계도 더욱 악화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터키는 사우디와 이란 간 줄타기 외교를 하다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걸프 국가 사이에서 고립된 카타르를 꾸준히 지원해 왔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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