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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작가ㆍ불의 화가 특별한 인연, 전시로 이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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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작가ㆍ불의 화가 특별한 인연, 전시로 이어지다

입력
2018.10.11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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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출신 장 보고시안 개인전, 전광영 뮤지엄그라운드서

세계적인 작가인 전광영(왼쪽)과 장 보고시안이 5일 경기 용인 뮤지엄그라운드에 전시된 보고시안의 작품 앞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환하게 웃고 있다. 작품세계와 예술활동이 묘하게 닮은 이들은 이날 회색 재킷 안에 흰색 셔츠까지 비슷하게 입었다. 뮤지엄그라운드 제공
세계적인 작가인 전광영(왼쪽)과 장 보고시안이 5일 경기 용인 뮤지엄그라운드에 전시된 보고시안의 작품 앞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환하게 웃고 있다. 작품세계와 예술활동이 묘하게 닮은 이들은 이날 회색 재킷 안에 흰색 셔츠까지 비슷하게 입었다. 뮤지엄그라운드 제공

“내가 겪은 전쟁과 학살의 아픈 역사가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고, 우리는 역사와 기억을 승화시켜 새로운 탄생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죠.”

높이 2m50㎝의 불에 그을린 상형 문자판 13개가 줄지어 걸려 있고, 그 아래 불에 시커멓게 탄 책 14권이 나란히 놓여 있다. ‘불의 화가’ 장 보고시안(69)이 직접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다. 그는 6일 문을 연 경기 용인 뮤지엄그라운드 개관전 작가로 선정됐다. 이번 전시는 그의 첫 한국 개인전이다. 뮤지엄그라운드는 ‘한지 작가’ 전광영(74)이 사재를 털어 설립했다. 개관전으로 보고시안을 초청한 데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전광영과 장 보고시안이 5일 경기 용인 뮤지엄그라운드에 전시된, 화염을 연상시키는 보고시안의 작품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전광영과 장 보고시안이 5일 경기 용인 뮤지엄그라운드에 전시된, 화염을 연상시키는 보고시안의 작품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둘의 인연은 3년 전에 시작됐다. 당시 보고시안 재단의 미술관인 빌라 엠팡(벨기에 브뤼셀 소재)에서 전 작가가 개인전을 했다. 그룹전만 진행해온 빌라 엠팡에서 개인전을 한 작가는 전 작가가 유일하다. 보고시안은 “이미 나의 가족들이 전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었고, 비엔날레 등을 통해 전 작가를 익히 알고 있었다”며 “하지만 직접 만나보니 예술에 대해 교감하는 점이 많아 개인전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보고시안은 시리아에서 태어나고 아르메니아에서 자랐다. 내전을 피해 벨기에로 망명했다. 가업인 보석사업으로 부를 쌓았고, 1992년 가족들과 함께 재단을 설립해 예술가들을 후원해왔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았지만 작가로서는 늦은 나이인 30세에 그림을 시작했다. 그는 “캔버스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추구하면서 불을 점점 더 많이 쓰게 됐다”며 “불은 내가 겪었던 역사와 기억을 태운다는 파괴적인 의미보다는 이것을 태워 새롭게 승화하려는 의미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캔버스를 접고 구겨서 불에 그을린 작품, 부채와 책 등을 태운 작품 등 그의 작품은 불을 이용했지만 마치 물감으로 그린 듯 아름답고 정교하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작품과 신작 70여점으로 구성된다.

보고시안의 작품에 스며든 정신은 전 작가의 그것과 묘하게 닮았다. 한지와 고서 등을 단단하게 접은 입체회화 작품으로 유명한 전 작가도 고국의 전통 소재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을 해왔다.

5일 경기 용인 뮤지엄그라운드에 전시된 보고시안의 대작 ‘불탄 문자판과 책’. 전광영 작가는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았다. 문자판은 불에 그을린 나무판처럼 보이지만 폴리에스테르(압축 스티로폼)를 사용했다. 뮤지엄그라운드 제공
5일 경기 용인 뮤지엄그라운드에 전시된 보고시안의 대작 ‘불탄 문자판과 책’. 전광영 작가는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았다. 문자판은 불에 그을린 나무판처럼 보이지만 폴리에스테르(압축 스티로폼)를 사용했다. 뮤지엄그라운드 제공

이번에 전 작가가 미술관을 열면서 작가이자 미술관 설립자로서도 같은 길을 걷게 됐다. 미술관의 설립 취지와 운영 방향도 비슷하다. 전 작가는 미술관을 열게 된 이유에 대해 “한국은 작가가 작업하기 어려운 곳”이라며 “학연과 지연, 인맥이 없는 한 제대로 작품을 알리지 못하고 좌절하는 작가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매해 7,000여명이 미대를 졸업하는데 이중 작가로 성장하는 이는 70명도 안 된다”라며 “(미술관을 통해) 학벌, 지연, 인맥 없이 작품이 좋은 작가에게 미래에 큰 작가로 성장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고시안의 대작 ‘불탄 문자판과 책’을 가리키며 “이런 작품은 전시되지 않으면 빛을 발하지 못한다”며 “예쁜 그림보다 전시장에서 빛을 낼 작품을 전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고시안은 “전 작가의 아름다운 꿈을 지원하고, 그 꿈이 실현된 것을 축하한다”고 박수 쳤다. 그는 “나도 처음 작가로 발을 내디뎠을 때 외롭고 힘들었다”며 “한국에서 전시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초대작가로 선정돼 더없이 영광이다”고 말했다.

보고시안은 내년 3월까지 뮤지엄그라운드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연 뒤 이어 캐딜락 하우스 서울, 경주 우양미술관 등으로 1년간 순회전을 갖는다. 전 작가는 다음달 18일부터 미국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한국인 작가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연다. 새로운 곳에서 작품활동을 이어가는 그들의 발걸음마저 나란하다.

용인=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보고시안 작가가 5일 경기 용인 뮤지엄그라운드에 선보인 자신의 ‘불의 시’ 책을 설명하고 있다. 책은 작가가 종이에 불을 다양한 방법으로 그을린 작품을 모았다. 강지원 기자
보고시안 작가가 5일 경기 용인 뮤지엄그라운드에 선보인 자신의 ‘불의 시’ 책을 설명하고 있다. 책은 작가가 종이에 불을 다양한 방법으로 그을린 작품을 모았다. 강지원 기자
전광영 작가가 젊은 작가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경기 용인 2,300평 부지에 지은 뮤지엄그라운드의 전경. 뮤지엄그라운드 제공
전광영 작가가 젊은 작가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경기 용인 2,300평 부지에 지은 뮤지엄그라운드의 전경. 뮤지엄그라운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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