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영의 악의 기원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ㆍ7일까지
최우혁 박은석 강상준 송문선 등 출연
이희준 극작ㆍ오경택 연출ㆍ박지리 원작
◇원작 영민하게 압축한 스토리
서울예술단의 신작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천재 작가로 불리는 박지리(1985~2016)의 동명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지난해 한국출판문화상 어린이ㆍ청소년 부문 수상작이기도 하다. 30년 전 살해 당한 천재 소년 제이 헌터의 죽음을 풀어가는 과정이 소설의 큰 줄기다. 이야기의 가지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단절할 수 없는 죄의 되물림이라는 소재를 만나 쭉쭉 뻗어 나간다. 이희준 극작가는 850쪽에 이르는 방대한 이야기를 원작의 손실을 최소화하며 속도감 있게 압축하는 데 성공했다.
무대 위 세상은 1~9지구까지 철저하게 나뉜 계급사회다. 사회와 정치를 이끌어가는 상위 지구와 경제를 지탱하는 중위 지구가 있고 권리와 책임은 물론 살아갈 의지조차 잃은 하위 지구가 존재한다. 1지구의 유서 깊은 엘리트 학교인 프라임스쿨의 모범생 다윈 영은 아버지 니스, 할아버지 러너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제이 헌터는 니스의 절친으로 다윈은 아버지와 함께 제이의 추도식에 참석한다. 다윈은 제이의 조카이자 자신의 친구인 루미 헌터를 도와 제이의 죽음 뒤에 숨겨진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범죄 스릴러 같은 이야기의 전개는 16세 소년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살인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는 극 중반에 이미 밝혀지지만 각 인물들의 사연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극이 끝날 때까지 긴장감이 풀어지지 않는다. 30년 전 9지구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12월 폭동과 현재의 장면이 교차해 무대에 오르며 ‘이마에 문신이 있는 주동자’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무대에 올라간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책과 마찬가지로 용서받지 못할 죄에 대해 되묻게 한다. 원작에 충실한 작품이지만 무대 공연에 맞게 소설 속 내용 일부를 덜어내고 간추렸다. 원작보다 루미의 비중은 줄었지만 결말에서는 마치 속편이 제작될 듯한 여운을 남긴다. 오래된 것들 교환 행사에서 다윈과 레오가 주고 받는 물품, 루미가 쓴 안경, 러너 영의 이마 문신 등은 원작과 다르지만 소설에 비해 짧은 극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든다.
공연 묘미 살린 연출, 시적인 가사
창작가무극이라는 장르에 맞게 주요 인물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데 노래 가사를 활용한다. 인물들의 사회의식이 드러나는 법학 수업 등은 소설 속 대사를 그대로 차용해, 원작의 묘미를 긴장감 있게 살렸다. 마치 시와 같은 운율에 멜로디를 입힌 듯한 가사가 특히 인상적이다. 극이 시작되자마자 다윈이 부르는 ‘프라임스쿨1’의 가사 ‘진리의 성을 쌓는 수도자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 진리의 이름 앞에 아이들은 스스로 심판대에 선다’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검은 하늘 아래 역사는 시작되고 비에 젖은 풀밭의 악취 속에 자라나 어린 새가 추락할 때 완성된다는 것을’이나, 극의 절정에 러너, 니스, 다윈 3인이 부르는 ‘푸른 눈의 목격자’의 ‘새벽이 오면 나는 나의 세계와 결별한다 난 어른이 된다’ 등 가사는 소설의 핵심을 짚었다.
어둡게 흘러갈 수 밖에 없는 내용임에도 사이 사이 유머를 살려 극이 너무 처지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을 한 무대에서 동시에 표현한 대목은 소설이 아닌 공연이기에 가능한 장면으로 절정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공연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건 역시 음악이다. 박천휘 작곡가는 대극장 뮤지컬로는 첫 작품임에도 관객의 귀를 휘감는 변화무쌍한 넘버들을 선사한다. 일부 배우들의 컨디션에 따라 넘버 소화력이 만족스럽지 않았으나, 고뇌와 분노, 절망을 표현하는 연기는 훌륭하다.
강추
참신한 소재와 플롯을 지닌 뮤지컬을 기다려온 관객에게는 신선함을, 원작 소설 팬들에게는 시적인 가사로 작품을 음미하는 재미를.
비추
뮤지컬은 ‘엔터테이닝’한 장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겐 복잡하고 어두운 서사에 자칫 마음이 심란해질 수 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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