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거물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이 저지른 성범가 잇따라 폭로되면서 전세계로 번진 성폭력 고발 운동 ‘미투’(Me Tooㆍ나도 당했다)가 1년을 맞았다. 성폭력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등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평가와 함께 단순 폭로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와인스틴의 만행은 지난해 10월5일 뉴욕타임스(NYT)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NYT은 당시 ‘와인스틴이 수십 년 간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회사 직원과 할리우드 여배우 애슐리 주드 등을 성희롱 또는 성추행했다’고 보도했다. 자신의 호텔 방으로 피해 여성을 부른 뒤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하거나 자신이 샤워하는 모습을 지켜봐 달라고 요구하는 식이었다.
‘미투’ 운동은 2006년 뉴욕의 시민운동가인 타라나 버크가 먼저 고안해낸 것이지만, 세계적으로 확산시킨 건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였다. 밀라노는 NYT 보도 직후(10월1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성희롱 또는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미투’라고 써달라’고 제안했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에게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밀라노의 동참 호소가 나온 지 수 일만에 수백만 명이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서 성폭력 경험을 공개했다. 가디언은 “페이스북에서는 24시간 만에 전세계에서 470만명이 참여했고, 1,200만개 이상의 게시물과 댓글 등이 올라왔다”고 전했다.
미투 운동은 성희롱, 성폭력 피해를 당해도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없었던 사회적 분위기를 변화시키는데 일조했다. 이전까지는 책임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전가되거나 개인의 문제로 치부 돼 피해자들이 수치심과 죄책감 속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미투 운동을 계기로 피해자들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게 된 것이다. 미국 매사츠세츠주 소재 비영리기관인 커뮤니티하우스는 “미투 운동은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유하고,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며 “미투 운동은 성폭력 문제에 대한 대화를 유도했으며, 이를 통해 피해자들을 치유하는 역할도 했다”고 평했다. 미투 운동을 통해 권력을 등에 업고 성희롱과 성폭력을 일삼던 이들은 줄줄이 퇴출되기도 했다. 와인스틴은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났고, 존 코니어스 하원의원, 앨 프랭컨 상의원의원 등 미국 정치인들은 정계를 떠났다. 미국의 유명 개그맨인 빌 코스비는 지난달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성폭력 없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투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USA투데이는 “미투 운동으로 성폭력 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지난 2년 간 수천 개의 관련 법안이 통과했지만 피해자들이 문제를 쉽게 폭로할 수 있도록 실제로 장벽을 제거하거나 가해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입법은 거의 없었다”고 분석했다. 미국 여성인권옹호 단체인 리걸모멘텀의 카롤 무디는 USA투데이에 “미투를 통해 법도 크게 바뀌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법이 있다 하더라도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덧붙였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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