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저지주 에그 하버 타운십에 있는 펀우드 중학교. 로봇학 수업을 이끈 코스텔로 코너는 지난달 24일 수업 전 칠판에 ‘Find your name and find your voice and #Speak yourself’란 문장을 적었다. ‘네 이름과 목소리를 찾고 너를 세상에 말하라’는 뜻으로 방탄소년단 리더인 RM이 뉴욕 유엔(UN)본부 신탁통치이사회 회의장에서 한 연설 내용 일부였다.
코너는 4일 한국일보에 “수업 때마다 학생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를 적는다”며 “아침에 RM의 유엔 연설을 TV로 보고 너무 인상 깊어 그날 칠판에 적었다”고 했다. “방탄소년단의 메시지가 내가 가르치는 젊은 세대들에겐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해” 연설 내용 일부를 학생들과 공유했다는 설명이었다.
미국 선생님과 학생의 ‘BTS 교류’
학생들은 선생님의 뜻을 재치있게 받았다. 한 학생은 코너의 다음 수업에 앞서 칠판에 ‘The me of yesterday The me of today The me of tomorrow with no exceptions it’s all me’라고 적었다.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도, 내일의 나도 모두 나’라는 뜻의 역시 RM이 유엔본부에서 한 또 다른 연설 내용이었다. 이 학생은 그 밑에 ‘Answer: Love Myself’란 부제도 달았다. RM의 연설문 내용이기도 하지만 방탄소년단의 최근 앨범 ‘러브 유어셀프 결 앤서’에 실린 노래 가사이기도 한 이 내용의 맥락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것이다. RM은 유엔 연설에서 “여러분이 누구이든, 어느 나라 출신이든, 피부색이 어떻든, 성정체성이 어떻든, 여러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당부하며 청년들이 ‘잃어버린 이름’을 찾기를 바랐다.
RM 연설 녹화까지
RM이 세상에 던진 긍정의 메시지는 미국 교육 현장에까지 큰 반향을 낳았다. 현지 학교에선 선생과 제자들이 RM의 연설을 공유하며 자기 긍정의 중요성을 토론했다. 최근 온라인엔 ‘Cisco came in and started telling the class about watching his favorite band BTS speak at UN on Monday’라며 교사가 학부모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진이 올라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린 학생 입에서 유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게 신기했고, 시스코란 학생이 한 얘기를 학교의 비전인 ‘사랑과 포용’의 사례로 활용해도 되겠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현지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RM의 연설은 화제였다. 시카고주에 살며 시카고트리뷴과 LA타임스 등 주요 일간지에 칼럼을 쓰는 김재하씨는 “아들이 다닌 초등학교에서 7명이 넘는 비아시아계 학부모가 내게 BTS 유엔 연설 봤냐고 묻더라”며 “그 중엔 아이에게 보여주려고 BTS 연설 장면을 녹화한 부모도 있었다”고 했다. 방탄소년단의 UN 연설은 당일 미국 방송 ABC 등이 생중계했다.
RM의 연설과 방탄소년단의 활약은 미국 아시아계 학부모들에 큰 버팀목이 되고 있기도 하다. 김씨는 “부모로서 자신과 (외양이) 닮은 롤모델이 생겼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라며 “초등학교 3학년인 내 아이 또래 아이들에겐 (RM의 연설이) 자신을 표현하는 가치를 깨닫게 해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의미를 뒀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포르투갈에선 RM의 유엔 연설이 영어 수업 자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포르투갈 팬 리타는 “영어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RM 유엔 연설 영상을 틀고 관련된 토론을 했다”고 전했다.
“날 혐오했지만” BTS 미국 팬들의 변화
방탄소년단의 해외 팬들에게 RM이 유엔 본부에서 던진 ‘너 자신을 말하라’는 화두의 파장은 더욱 컸다. 미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Speak Yourself’ 관련 글들이 쏟아졌다. ‘어려서 성적 학대를 자주 받다 그런 나를 혐오하게’(go****) 됐고, ‘잦은 이사로 친구를 제대로 만들 기회가 없었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라 사람들이 날 가난해서 싫어하는 줄’(ji****)알고, ‘성정체성을 알지 못해 고민’(jen****)하다 힘든 시절을 겪었는데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계기로 용기를 얻었다는 내용이었다. 나이와 본명까지 밝힌 뒤 고백 형식으로 SNS에 풀어내는 ‘Speak Yourself’가 하나의 운동처럼 커지는 모양새다. 방탄소년단의 음악과 유엔 연설을 계기로 청소년들이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세상과 쌓았던 담장을 허물고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방탄소년단을 지지하는 뉴욕 팬 연합 ‘BTSxNYC’를 운영하는 엠마는 “‘내가 실패하거나 상처를 받아도 내 꿈을 향해 끝없이 달린다’는 방탄소년단의 노래 ‘포에버 영’을 가장 좋아한다”며 “RM의 유엔 연설은 내게 큰 공명을 줬고 이곳 대중에게 더 큰 관심을 낳게 했다”고 전했다.
뉴욕=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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