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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응징하려던 그는 어쩌다가 악이 되었나... 돈 윈슬로의 경찰 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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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응징하려던 그는 어쩌다가 악이 되었나... 돈 윈슬로의 경찰 누아르

입력
2018.10.05 04:40
수정
2018.10.05 07:5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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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포스' 쓴 미국 소설가 돈 윈슬로. ⓒA. Anderson, 위즈덤하우스 제공
'더 포스' 쓴 미국 소설가 돈 윈슬로. ⓒA. Anderson, 위즈덤하우스 제공

미국 소설가 돈 윈슬로(65). 믿고, 아니, 무조건 보는 독자를 구름처럼 거느린 이름이다. ‘개의 힘’(2012)의 그 작가다. 윈슬로의 힘은 스케일이다. ‘개의 힘’에서 1970년대부터 30여년간 계속된 미국과 멕시코의 마약 전쟁사를 그야말로 장대하게 썼다. 서사가 고픈 국내 독자들에게 그는 아이돌처럼 등장했다.

신작 ‘더 포스’는 현대 배경의 경찰 누아르다. 이번에도 스케일이 크다. 뉴욕 경찰과 검찰, 변호사, 연방정부, 마피아가 너나 없이 돈 먹고 배신도 먹이는 세계를 세밀하게 그렸다. 두 권짜리 책 분량은 번역본 기준 200자 원고지 1,800여장. 요즘 장편소설이 700~800장까지 짧아졌으니, 각오하고 읽어야 할 것이다. 도입부가 고비다. 커다란 이야기의 밑그림을 그리느라 다소 장황하지만 조금만 참으면 된다.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가 격렬하고 빠르게 돌진한다. 윈슬로는 지칠 줄 몰라서, 속도를 줄이겠다 싶은 대목에서 거듭 가속 페달을 밟는다.

주인공은 뉴욕 경찰 특별수사대 ‘다 포스’의 리더인 데니 멀론 경사다. 경찰 집안 출신인 그는 ‘경찰임’이 정체성인 ‘경찰 인간’이다. 맨해튼 북부 할렘이 그의 구역이다. 유능하고 정의로운 그는 자칭 ‘이 구역의 왕’이다. 그것도 세심하고 눈 밝은 왕이어서 마피아 조직부터 지질한 가정폭력범까지 일일이 힘으로 다스린다. “이 세상은 내 거야, 내 거, 내 거. 내가 이 세상을 계속 지킬 수만 있다면. (…) 우리는 거칠고, 강하고, 가차 없고, 공정한 지배자라는 명성을 획득해서 잘 조율한 자비와 함께 난폭한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 그게 바로 왕이 하는 일이다.”

더 포스 1∙2

돈 윈슬로 지음∙박산호 옮김

위즈덤하우스 발행∙각 384∙370쪽∙각 1만3,000원

왕은 행복하게 은퇴하는 법이 없다. 대개 쫓겨난다. 왕좌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왕일수록 더욱 처참하게. 멀론도 그렇다. 여느 힘센 자처럼, 멀론도 선을 넘는다. 호의를 권리로, 뇌물을 수당으로 착각하는 게 시작이다. ‘악을 응징하기 위한 악은 정의’라는 치명적 착각으로 끝내 파멸 위기에 몰린다. “내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뒤늦게 정신을 차리지만, 너무 늦었다. 덫에 걸린 짐승의 몸부림은 죽음을 앞당길 뿐. 그의 운명도 다르지 않다. 단, 그는 혼자 죽지 않는다. “달콤하면서도 악취를 풍기는 풍요”에 취한 뉴욕의 권력자들이 그의 반격에 스러진다.

멀론은 할리우드 영화의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윈슬로는 그를 입체적으로 그리는 데 필력을 집중했다. 연민하기엔 그의 죄가 크다. 미워할 수도 없다. 매력적인 데다가 구린내 나는 시스템의 희생양이기도 하니까. “우리의 시작은 우리의 끝을 알 수 없고, 우리의 순수함은 우리의 타락을 상상할 수 없다. 그때 그가 아는 거라곤 이 일을 사랑한다는 것뿐이었다.” 영웅은 그렇게 퇴장한다. 윈슬로의 문장은 소설의 또 다른 미덕이다. 그는 삶의 통찰을 군데군데 담으면서도 촌스러워지는 선을 넘지 않았다. 경찰 세계 묘사가 박진한 건 5년간 경찰 수십 명을 인터뷰한 덕분이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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