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서부 자동차 횡단’은 KB손해보험 12년차 직원 A과장의 오랜 소망이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며 긴 휴가를 내기란 현실적으로 힘든 탓에 마음에만 간직해왔다. 그러던 그가 최근 3주간 자동차로 미국 서부를 누비며 꿈을 현실로 이뤘다. 올해부터 회사에서 시행한 한 달짜리 ‘자기계발 휴가’ 덕분이었다. A과장은 “새로 도입된 휴가 제도를 활용해 꿈같은 한 달을 보냈다”며 “재충전을 통해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원동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KB금융지주의 기업문화 혁신 실험이 주목 받고 있다. 유연한 근무부터 자유로운 복장, 장기 휴가 지원까지 그야말로 광폭 변화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금융회사는 고루하고 보수적’이라는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 마치 정보기술(IT) 기업처럼 유연한 사고와 창의성이 넘치는 조직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 KB금융의 복안이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은 지난달부터 직원의 업무 특성과 상황에 따라 스스로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 사전체험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시차출퇴근제(회사가 제시하는 근로시간 유형 중 원하는 유형을 선택) △자율출퇴근제(오전 6시~오후 1시 사이 자유롭게 출근해 8시간 근무) △탄력근무제(주당 평균 40시간 근로를 조건으로 일일 근로시간을 스스로 조정) 등 세 가지 근무 유형 중 하나를 선택해 7주간 해당 유형에 맞춰 출퇴근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직원들이 일과 생활의 조화를 찾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프로그램 시행 취지다. 낮 12시~오후 1시로 정해져 있던 점심시간도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도입(지난달 17일)된 지 한 달이 채 안됐지만 직원들의 호응이 높다는 것이 KB금융 측의 설명이다.
KB금융은 지난달 징검다리 휴일을 전후 영업일과 묶어 연휴로 사용할 수 있는 ‘홀리데이 박스’ 제도도 도입했다. 이 제도를 활용해 이달 공휴일인 한글날(9일)을 끼고 6일부터 닷새간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기로 한 KB금융의 B대리는 “부서 막내이다 보니 예전이라면 공휴일 전후에 휴가를 쓴다고 선뜻 말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회사 차원에서 제도화하고 사용을 권장하니 눈치 볼 필요 없이 휴가를 쓸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계열사 중엔 KB손해보험이 금융권 최초로 전 사원 대상 최장 한 달간의 휴가 기간을 보장하는 ‘장기 자기계발 휴가’ 프로그램을 시행하며 금융권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ㆍ일과 삶의 균형)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금융권에선 한 달가량의 장기 휴가가 드물지 않은 일이지만, 국내에선 장기 유급 휴가를 갖는 경우가 흔치 않아 KB손보의 장기 휴가제는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KB의 혁신 바람은 복장에도 불고 있다. 지난달 3일 근무복장을 전면 자율화한 KB금융에 이어 KB국민은행이 추석 연휴 직후인 지난달 27일 ‘신(新) 복장 착용 기준’을 시행했다. 경쟁 은행들이 고객 응대가 적은 본점이나 IT 관련 부서에 한해 캐주얼 복장을 허용하는 것과 달리, KB금융은 영업점까지 자율 복장을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새 기준에 따라 남직원은 기존 넥타이 정장 대신 노타이(No-Tie)와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이 가능하고, 여직원은 유니폼, 일반 정장, 캐주얼 정장 중 원하는 복장을 선택할 수 있다. 국민은행은 내년 5월부터 유니폼을 전면 폐지한다는 방침이다.
KB금융은 이달부터 근무시간 이후 업무용 PC가 자동으로 종료되는 PC 오프제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KB금융은 300인 미만 사업장이라 내후년부터 주 52시간 근무를 적용 받지만, 기업문화 혁신을 앞당기려 선제적으로 나선 것이다. KB국민은행, KB증권, KB손해보험, KB국민카드 등은 이미 PC 오프제를 시행하고 있다. KB금융 관계자는 “디지털, 인공지능(AI) 등 최첨단 기술과 로봇이 각광받는 시대일수록 이를 활용하는 ‘사람’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며 “KB금융만의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기업문화 정립 프로젝트를 통해 직원들이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꽃 피울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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