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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톺아보기] ‘늙은이’와 ‘어르신’

입력
2018.10.04 10:3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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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의 사전적 의미는 ‘나이가 많아 중년이 지난 사람’이다. 어떤 가치 판단도 들어가지 않은 뜻의 말이다. 그러나 현실 언어에서는 ‘늙은이’는 비하의 뜻이 있는 말로 인식된다. 이처럼 ‘늙은이’를 비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건, 세월이 지나면서 ‘늙은이’라는 말의 가치가 하락한 결과다.

소파 방정환은 어린아이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뜻을 담아 ‘어린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을, 어른을 이르는 말인 ‘젊은이, 늙은이’와 같은 형식으로 만듦으로써, 어린아이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이를 뒤집어 보면 ‘어린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1920년대만 해도, ‘늙은이’는 ‘나이 많은 어른’을 이르는 일반적인 말이었다.

‘늙은이’라는 말의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한 배우의 근황을 소개하는 문화면 기사의 제목을 “팬들의 매혹 속에 인기가도 10년, 젊은이 役서 늙은이 役까지도 척척”(매일경제, 1969.11.3)이라 할 정도로, ‘늙은이’는 1970년대까지 가치 중립적인 말로 폭넓게 쓰였다. 그런데 가치 중립적인 표현으로 ‘노인’을 선택하는 빈도가 점점 높아지자, ‘늙은이’란 말은 나이 든 사람을 비하하는 맥락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노인’을 ‘어르신’으로 부르자는 제안이 있었던 건 ‘노인의 날’을 제정하면서부터다. ‘남의 아버지를 높이는 말’인 ‘어르신’을 사용함으로써 노인 존중의 분위기를 만들자는 뜻이었으리라. 그런데 ‘어르신’을 모든 노인을 대접하는 말로 굳이 확장해 쓰게 된 건, ‘노인을 대접해 이르던 말’인 ‘영감(님)’의 가치가 하락한 상황과도 관련된다. 한 낱말의 의미와 가치는 그와 관련한 낱말들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되기 마련이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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