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경기선행종합지수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경기 흐름을 예측하기 위해 설계된 지수인데도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지수보다 늦게 움직이며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가계소득 동향 조사를 둘러싸고 이른바 ‘맞춤형 통계’ 의혹이 불거진 데다가, 우리 경제의 하강 국면 진입 여부에 대한 논란도 첨예한 터라 통계청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3일 통계청에 따르면 통계청은 매월 산업활동동향을 통해 발표하는 선행종합지수 구성지표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어운선 산업동향과장은 “선행종합지수를 구성하는 지표 중 일부 지표의 선행성이 약화돼 당국 기대와 다른 모습으로 지표가 산출되고 있다”며 “대체 가능한 지표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등 개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계청은 생산, 소비, 고용, 금융, 투자 등 경제 부문별로 경기 흐름을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는 지표를 선별해 매월 경기종합지수를 작성해 경기 국면(상승 또는 하강), 전환점, 변동속도 판별에 활용한다. 경기종합지수는 실제 경기 변동과의 시차에 따라 선행, 동행, 후행 종합지수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선행종합지수는 미래 경기 흐름을 6개월가량 앞서 내다볼 수 있도록 고안된 지표로 ▦재고순환지표 ▦소비자기대지수 ▦기계류내수출하지수 ▦건설수주액 ▦수출입물가비율 ▦구인구직비율 ▦코스피지수 ▦장단기금리차 등 현재 경기를 선행하는 특성을 가지는 8개 하위 지수로 구성된다.
선행종합지수는 현재 경기 흐름을 나타내는 동행종합지수보다 앞서 움직이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최근 지표 흐름을 보면 되레 선행지수가 동행지수를 뒤따라가는 모습이다. 경기 흐름을 파악하거나 예측할 때는 각 종합지수에서 추세변동분을 제거한 순환변동치를 활용하는데,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2017년 3월 100.7 고점을 찍은 후 꾸준히 하락해 지난달 98.9를 기록한 반면,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이보다 4개월 뒤인 2017년 7월에야 고점(101.2)을 찍고 하락해 지난달 99.4를 기록하고 있다. 선행지수가 일정한 격차를 두고 동행지수보다 앞서가야 하는데 그 격차가 좁아지다가 아예 순서가 역전된 셈이다.
경기 국면 전환기에 미리 경보를 울려야 할 선행종합지수가 제 역할을 못하는 이유로 통계청은 우리 경제가 오랫동안 저성장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기업 설비투자 관련 지표인 기계류내수출하지수의 선행성 약화로 이어져 정확한 경기 예측을 가로막고 있다고 판단, 해당 지수의 교체를 검토하고 있다. 어 과장은 “저성장 기조가 계속되면서 기업들이 성장을 기대하고 미리 투자를 하는 게 아니라 경기 흐름에 맞춰 투자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해당 지표의 선행성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장단기금리차도 교체 검토 대상이다. 장단기금리차는 국고채 5년물 금리(장기금리)에서 무담보 1일물 콜금리(단기금리)를 뺀 수치로, 통상 경제 성장이 예측되면 장기금리가 상승하면서 금리차가 커지고 경기 수축이 예상되면 반대로 금리차가 작아진다. 최근엔 4개월 연속 감소했다. 통계청 안팎에선 장단기금리차가 기대와 달리 실물경제와 비례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경기 예측이 불안해질 때는 되레 장기금리가 상승하는 경우도 있는데, 실제 경제 위기가 발생해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금리를 높게 책정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저금리 기조 또한 금리와 실물경기의 상관관계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교체 검토 대상인 건설수주액은 선행성 문제와는 별개로, 지표 변동성이 지나치게 커서 선행종합지수 악화에 기여하는 정도가 과장됐다는 것이 통계청 판단이다. 건설투자 지표인 건설수주액은 올해 4월(-15.9%), 8월(-11.4%) 두 자릿수 감소폭을 보였다.
그러나 가계소득 동향 조사를 둘러싸고 청장 경질 논란에 휩싸였던 통계청 내부에선 선행종합지수 개편에 신중한 모습이 역력하다. 개편된 지수가 자칫 객관성이나 정확성 논란에 휘말릴 경우 정부 입맛대로 국가통계를 산출한다는 이른바 ‘통계 마사지’ 논란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최근 우리 경제가 침체 국면에 접었다는 진단을 두고 정부와 학계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점도 통계청의 입지를 좁히는 모양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갑작스레 선행종합지수의 구성 지표를 바꾸면 통계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는 만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선행지수와 구성 지표를 통일하는 등 객관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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