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예적금 및 보험 계약의 중도 해지 규모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수 경기 부진에 따른 가계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지적 한편으로, 저금리 시대에 가계가 수익률 낮은 금융자산 대신 부동산 투자에 나선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3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 동안 시중은행에서 개인 및 개인사업자 명의의 정기예금과 적금을 중도 해약한 건수는 725만4,622건, 금액으로는 52조2,472억원을 기록했다. 1년 전(2016년 7월~2017년 6월)과 비교하면 건수는 175만927건(31.8%), 금액은 8조9,115억원(20.6%) 늘었다. 최근 5년간(2013년 7월~2018년 6월)의 해지금액 증가율(1년 전 대비)을 보면 2015~2016년 0.3%로 가장 낮았다가 최근 2년간 6.1%, 20.6%로 급등하는 추세다.
생명보험사의 보험상품 해약 건수(상위 6개사 합계) 역시 2015년 7월~2016년 6월 215만737건까지 떨어졌다가 2016~2017년 229만67건(1년 전 대비 6.5% 증가), 2017~2018년 249만1,372건(8.8%)으로 급증했다. 손해보험상품 해약 건수(상위 6개사 합계) 역시 2015~2016년 289만4,765건에서 2016~2017년 309만5,375건(6.9%), 2017~2018년 328만361건(6.0%)으로 치솟았다.
이 의원은 “예적금과 보험 해약건수의 지속적 증가는 서민 가계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음을 보여준다”며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해약건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은 가계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도 “경기가 어려우면 소비자들이 보험을 가장 먼저, 예금을 가장 나중에 정리한다”며 “최후의 보루인 예적금 햬지가 크게 늘어난 것은 그만큼 경기가 어렵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한편에선 2016년 무렵부터 가계가 여윳돈을 저축 대신 주택 구매에 쓰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5년 94조2,000억원이었던 가계(비영리단체 포함)의 순자금운용 규모는 2016년 69조9,000억원, 지난해엔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9년 이후 최저치인 50조9,000억원으로 급감했다. 가계 순자금운용은 가계가 예금ㆍ투자 등 금융상품을 통해 굴린 돈(자금운용)에서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자금조달)을 뺀 수치로 흔히 가계 여유자금으로 해석된다. 올해 들어서도 2분기 가계 순자금운용 규모는 11조원으로 지난해 3분기(9조7,000억원) 이래 최소치를 기록했다. 2016년 이래 서울 지역 아파트값이 20% 이상 오르는 등 주택시장이 호황기를 맞은 상황에서 가계가 금융자산을 정리하거나 주택대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주택시장에 자금을 투입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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