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서울 등 수도권 17곳의 신규 공공택지 중 가장 눈길을 끈 서울 송파구 옛 성동구치소 부지 인근 주민들이 박원순 서울시장과 박성수 송파구청장에 대한 주민소환투표를 추진하는 등 사실상 집단 행동에 돌입했다. 이러한 주민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은 강동구 고덕강일지구와 경기 광명시 하안2지구로 확산될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회심의 카드로 내 놓은 주택 공급책이 처음부터 꼬여 버렸다.
2일 부동산 업계와 송파구 등에 따르면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지난해 법무부에 문정동 법조단지(서울동부지청ㆍ지법)를 제공하는 대신 성동구치소 부지(5만8,000㎡)에 대한 토지 이용 권리를 받았다. 강남4구에 포함되는 송파구에 개발 가능한 대형 부지가 나오자 지난 6ㆍ13 지방선거 당시 박 서울시장과 박 구청장 후보는 복합문화시설과 청년 일자리 지원 시설 등을 짓겠다고 공약했다. 문화시설 등 복지 관련 인프라가 구축되면 인근 집값은 오르는 경우가 많다. 이에 송파구민들은 박 시장과 박 구청장 후보를 적극 지지했다. 실제로 선거 후 성동구치소 인근 가락쌍용아파트 시세는 단숨에 1억원이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달 21일 정부가 “성동구치소 부지엔 공공주택(신혼희망타운)을 짓겠다”고 발표하면서 지역 분위기는 돌변했다. 주민들은 “밀실 졸속 행정”이라고 강력 반발하며 ‘성동구치소 졸속개발 결사반대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 관계자는 “40여년간 구치소라는 혐오 시설을 끌어안고 초등학교에 아이들을 보낸 주민들 입장에선 가뜩이나 과밀화된 학급 상황과 심각한 교통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공공주택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 반발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넘어 집회와 시위 등 집단행동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성동구치소 임대주택 반대’ 카페 회원수는 1,000명에 육박한다. 이들은 ‘성동구치소 졸속개발 결사반대 범대위 출범식’도 준비중이다. 일부 주민들은 이미 서울시청 앞에서 “국민혈세 낭비하는 성동구치소 졸속 개발에 반대한다”는 집회도 벌였다.
특히 이날 카페에선 주민소환투표 등에 대한 논의까지 이어졌다. 이들이 추진하는 주민소환투표는 2006년 제정된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다. 청구권자(구민)의 10% 이상(시장) 혹은 15% 이상(구청장)이 주민투표 실시에 대한 서명을 이뤄내면 지자체장에 대한 제재 여부를 물을 수 있다. 다만 투표율은 33.3%를 넘겨야 한다. 국내에선 2009년 경기 하남시와 제주에서 주민소환투표가 실시된 적이 있지만 33.3%의 투표율을 넘기지 못해 실질적 제재는 이뤄지지 못했다. 주민들은 또 공공주택 공급지로 함께 발표된 강동구 고덕강일지구 주민들과 연대 투쟁을 벌이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비슷한 처지인 경기 광명시 하안2지구 주민들도 들썩이고 있다. 하안지구 주민 모임의 한 대표는 “교통 정체가 심해 지금도 출근 시간 서울 경계까지 닿는 데 40분 이상이 걸리는데 정부가 5,400가구의 공공주택을 한 번에 공급하면 우리는 어떻게 살란 말이냐”며 “성동구치소 인근 주민들의 움직임을 보고 우리도 지역 주민들을 규합해 정부에 강하게 항의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상황이 긴박해지면서 서울시와 SH는 진화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국토교통부, SH와 협의를 통해 분양 중심의 공동주택을 건립할 계획”이라며 “(규모가 다소 줄더라도) 복합문화시설 등도 반드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SH 관계자 역시 “정부와 서울시가 원하는 신혼희망타운을 짓되 나머지 주택의 전용면적을 좀 더 소형으로 바꾸는 방식을 도입해서라도 일반 공급을 늘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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