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가석방과 감형을 포기하고 재심을 택한 건 제가 범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가 지난달 28일 친부살해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18년째 청주여자교도소에서 복역중인 무기수 김신혜(41)씨에 대해 재심을 최종 확정한 사실이 2일 확인됐다. 경찰 수사의 위법성과 강압성을 인정한 원심 판결을 인용하며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한 것이다.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 확정은 사법 사상 처음이다. 재심은 확정된 판결에 중대한 오류가 있을 경우 당사자 등의 청구로 판결의 옳고 그름을 다시 심리하는 절차다.
김씨 사건은 발생 당시부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사건은 2000년 3월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전남 완도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김씨 아버지(당시 52세)가 숨진 채로 발견됐는데, 부검 결과 시신에서 다량의 수면제 성분과 알코올이 검출됐다. 경찰은 “김신혜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김씨 고모부 말을 듣고 이틀 뒤 김씨를 존속살해 및 사체 유기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경찰 초기 조사에서 김씨는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진술했고, 경찰은 김씨 부친이 김씨와 이복 여동생을 장기간 성추행을 한 데 따른 분노를 범행 동기로 봤다.
그러나 광주지법 해남지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김씨는 기존 진술을 번복했다.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는 고모부 말에 동생 대신 자신이 감옥에 갈 생각으로 거짓 자백을 했다는 것이다. 자신이나 여동생에 대한 부친의 성추행도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증명할 구체적 물증이나 사건 당시 알리바이가 없었다.
반면 검찰은 김씨가 아버지 명의로 생명보험을 8개나 가입했고, 김씨 집에서 살해 계획이 담긴 메모가 발견된 점 등을 살해 근거로 들었다. 1심 법원은 검찰 손을 들어줬고,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씨는 판결에 불복했지만, 고등법원 항소와 대법원 상고마저 각각 기각되면서 2001년 3월23일 형이 확정됐다.
김씨는 이후 경찰의 강압수사 등을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대부분의 기결수들이 하는 교도소 내 노역도 거부했다. 그러던 중 15년 만인 2015년 1월 김씨는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 법률구조단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다. 경찰이 2인1조 압수수색 규정을 어기고 영장 없이 김씨 집을 압수수색 했음에도 둘이 한 것처럼 허위로 수사기록을 작성했고, 김씨가 현장검증을 거부했는데도 영장 없이 범행을 재연하게 한 점 등을 재심 사유로 들었다. 김씨는 광주지법 해남지원의 재심 심문에서 눈물로써 2시간 동안 무죄를 호소했고, 그 해 11월 18일 재판부는 “수사에 관여한 경찰관의 직무에 관련된 범죄가 인정된다”며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에 즉각 항소한 검찰은 “설령 사법경찰관 등이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죄를 범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김씨의 범죄사실을 증명하는 것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김씨 무죄를 증명할 새로운 증거가 없는 만큼 재심의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광주고법은 “재심개시 절차와 재심심판 절차는 다르다”며 “재심개시 절차에선 재심사유가 있는지 여부만을 판단하고, 해당 사유가 재심대상 판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형사소송법 제420조 7호는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에 의해 증명된 때’로 재심 이유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수사과정에서의 위법성만으로도 재심 결정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심 개시 절차에만 3년을 끌어온 끝에 김씨는 대법원의 최종 결정까지 받아 친부의 죽음과 관련한 실체적 진실을 다투게 될 전망이다. 법원은 수사 과정의 위법성만 문제 삼아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지만 유ㆍ무죄 공방은 불가피하다. 김씨 변호인들은 재심 청구 단계에서 ▦김씨의 아버지 살해 여부 ▦김씨 아버지의 성추행 여부 ▦다액의 보험금 수령 목적 여부 등 김씨의 무죄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다수 제시했음에도, 법원은 “‘새로 발견된 증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재심 개시 결정에도 불구하고 김씨에 대한 형 집행정지 결정은 내리지 않았다.
김씨의 재심 공판은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1심 판결에 대한 재심 청구였기 때문에 1심 재판을 맡았던 광주지법 해남지원에서 열리게 된다. 재심 또한 검찰과 피고 한쪽이라도 불복할 경우, 항고가 가능하고 대법원 판결까지 받을 수 있다. 김한규 서울변호사회 전 회장은 “재심사유에 관계없이 재심공판이 시작되면 실제로 김신혜씨가 아버지를 죽였냐, 죽이지 않았냐에 대한 공방이 매우 치열할 것”이라며 “이 경우 결과에 따라 어느 한쪽이든 불복할 가능성도 커 3심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재심 청원 등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무기수 김씨가 제2막에서 극적인 법정드라마를 쓰게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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