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비핵화 협상 최대 쟁점인 6ㆍ25전쟁 종전선언과 관련해 “미국이 종전을 바라지 않는다면 우리도 이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는 북한 주장이 나왔다. 종전선언 대가로 광범위한 핵 신고ㆍ검증을 수용하라는 미국 측 요구에 대응하는 차원으로 보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본격적인 북미 물밑 기싸움이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2일 ‘종전은 누가 누구에게 주는 선사품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관영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종전은 결코 누가 누구에게 주는 선사품이 아니며 우리의 비핵화 조치와 바꾸어먹을 수 있는 흥정물은 더더욱 아니다”라고 밝혔다. 6ㆍ12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에 따라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위해 종전선언은 필요하지만 여기에 마냥 목을 매지는 않겠다는 입장도 제기했다.
북한은 특히 미국 일각에서 종전선언의 대가로 ‘핵 계획 신고 및 검증, 영변 핵시설과 미사일 시설 폐기’를 주장하는 것을 두고 “황당무계한 궤변”이라고 맹비난했다. ‘미국의 조선문제 전문가’를 거론하긴 했지만 사실상 협상을 앞둔 미국 트럼프 행정부를 겨냥한 주장으로 해석된다.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미국 상응조치에 따라 ‘영변 핵시설 항구적 폐기’를 약속했는데도 미국 조야에서 핵무기ㆍ핵물질 목록 신고 등 추가 조치를 계속해서 요구하는 데 대한 반발 성격도 있다. 북한이 ‘종전선언 하나로 영변 핵시설 폐기 이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10월 초로 예고된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까지 북미 간 줄다리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통상적인 수순인 ‘신고-검증-폐기’ 절차를 밟을지, 아니면 남북이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알려진 ‘핵심 시설 폐기 후 검증’ 사이클을 미국이 받아들일지다. 후자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21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전통적 비핵화 과정과 순서가 달라질 수 있다”며 시사한 방안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아직 북미 협상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것을 봐서 미국 쪽에서도 북측 제안의 실효성을 검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협상에서는 영변 핵시설 폐기 로드맵과 종전선언 등 상응조치 간 짝을 맞추는 작업이 이뤄져야 하므로 이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기존 입장대로 ‘선(先) 신고ㆍ검증’을 고수할 경우, 북측이 종전선언에서 더 나아가 대북제재 유연화 등 추가 상응조치를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 역시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핵ㆍ미사일) 시험들이 중지된 지 1년이 되는 오늘까지 제재 결의들은 해제되거나 완화되기는커녕 토씨 하나 변한 게 없다”고 운을 뗀 바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종전선언과 함께 대북제재 유연화 및 해제 조치를 본격적인 비핵화 조치 이전이나 비핵화와 동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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