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이동식 저장장치(USB)를 확보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사실상 자발적으로 검찰에 낸 USB가 이번 수사의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될지 관심이다.
1일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전날 경기 성남시 양 전 대법원장 자택에서 USB 2개를 확보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 그의 변호인은 압수수색 당시 “양 전 대법원장이 퇴직하면서 갖고 나온 USB를 서재에 보관하고 있다”는 취지로 진술했고, 검찰은 이들의 동의를 얻어 USB를 넘겨받았다. USB에는 양 전 대법원장이 재직 중 다룬 자료들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전날 양 전 대법원장의 개인 차량과 고영한 전 대법관의 서울 종로구 자택, 퇴임한 박병대ㆍ차한성 전 대법관이 각각 현재 근무 중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사무실과 법무법인 태평양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 안팎에선 사실상 임의 제출된 USB가 재판거래 등 양 전 대법원장 혐의를 밝힐 주요 증거로 작용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밝히지 않는 이상 검찰이 파악할 수 없었던 USB 존재를 드러내고,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가져가도록 한 것은 사실상 혐의 입증과는 무관한 ‘빈 깡통’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경우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는 자세를 검찰은 물론 대외적으로 알리는 동시에 의혹과 무관하다는 ‘자신감’의 표현일 수 있다. 앞서 지난 6월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에 부당하게 관여한 적이 없고, 재판을 흥정거리로 삼아 거래를 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기자회견을 했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사법농단 의혹과 무관한 내용만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사법농단 의혹의 실체가 계속 드러나면서 거세지는 비판 여론을 의식해 검찰 수사에 협조한다는 입장을 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양 전 대법원장의 증거자료 ‘자진 납세’가 계산된 전략이라기보다 뜻밖의 검찰 압수수색에 따른 돌발적인 행동일 가능성도 없지 않아 USB 내용이 폭발성을 가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USB 내용물을 들여다보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검찰은 전날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양 전 대법원장과 전직 대법관 3명의 압수물들을 분석하는 한편, 양승태 사법부에서 대법원 재판연구관 및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근무한 전ㆍ현직 판사들을 연일 소환해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및 전교조 법외노조 소송 개입, ‘정운호 게이트’ 등 법원 관련 수사 기밀 유출, 판사 뒷조사(블랙리스트) 작성ㆍ관리, 법원행정처 비자금 조성 등 사법농단 최정점에 양 전 대법원장이 있다는 다수의 진술과 증거들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 등을 마치는 대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시작으로 전직 최고위 법관들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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