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시에 거주하고 있는 윤모(20)씨는 지난해 5월 군 입대를 위해 신체검사를 받았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군대라도 가서 가정경제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신체검사 결과 정신질환이 의심돼 재심판정이 났고, 정신과 치료를 권유받은 것이다. 지역의 한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성인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았다. 진단 후 매주 1회 병원에 다니며 약물 치료를 받고 있는 윤씨는 “평소 사소한 일에 짜증을 많이 내고 폭력적인 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ADHD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며 “지금은 내 젊은 날을 송두리째 갉아먹고 있는 ADHD라는 놈을 없애는데 온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부천시에 거주하고 있는 오모(23)씨는 초등학교 2학년 신체검사에서 ADHD 의심 진단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치료를 한 적이 없다. “내 아들이 정신질환자일 리 없다”는 부모의 잘못된 믿음이 아들의 병을 키운 것이다. 집중력 저하와 폭력을 동반한 과잉행동으로 오씨는 학창시절 ‘문제아’로 낙인이 찍혔다. 그는 “10분 이상 책을 볼 수 없는 나에게 부모님은 ‘넌 할 수 있다’만 강조했다”며 “설상가상으로 중학교 1학년 때 어머니가 유방암에 걸려내 병을 치료할 경제적 여유마저 사라지는 바람에 방치된 인생을 살았다”고 말했다.
◇갈수록 늘어나는 성인 ADHD 환자
ADHD는 주의력이 부족하고 산만하며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특성 등이 나타나는 질병이다. 학교나 직장에서 주어진 일을 제대로 완수해 내지 못하고 쉽게 화를 내거나 폭력적인 성향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어린 시기에 나타나고 실제로 환자 대부분이 10대이지만 점점 성인 ADHD 환자도 증가하는 추세다. 어렸을 적 증상이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면서 저절로 줄어들기도 하지만, 일부 성인이 되어서도 증상이 이어져 뒤늦게 진단을 받는 경우다.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를 받으면 성인기까지 이어지지 않을 확률이 높지만, ‘문제아’로만 여기고 본인과 부모 모두 질병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ADHD라는 질병에 대한 인식은 생겼으나 역시 정신과 질환에 대한 편견 때문에 진료를 기피하기도 한다.
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병원에서 ADHD 치료를 받은 환자는 2015년 5만106명에서 2016년 4만9,623명으로 감소했다가 2017년 5만3,070명으로 증가했다. 성별로 보면 2017년 전체 환자 중 남성 환자가 4만2,526명으로 1만544명인 여성보다 4배 정도 많다. 주로 어린 시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성 상 연령별로는 10대가 53.6%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10세 미만이 32.7%로 그 다음이었다. 20세 이상 성인 환자는 총 13.7%(7,748명)로 비중은 적지만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 2016년 9월 보건복지부 개정 고시에 따라 ADHD 치료제의 보험급여 적용 범위가 성인까지 확대되면서 진단이 늘었기 때문이다.
성인 환자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20대 환자 수는 2015년 2,909명에서 2016년 3,776명, 2017년 5,336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성인까지 급여적용 범위가 확대돼 20대 환자들이 증가하고 있지만, 아동기 때 ADHD 의심 진단을 받고도 치료를 받지 않고 있는 이들과 성인기에 다시 ADHD가 재발한 이들까지 포함하면 실제 환자 수는 진료인원의 4배까지 추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성인 ADHD 환자가 실제로는 2만, 3만명에 달할 거라는 추정이다.
◇‘진학ㆍ취업ㆍ이성’ 모두 포기한 삶
성인기에 ADHD가 발병한 환자들은 정상적 사회생활이 거의 불가능해진 다음에야 자신의 병에 대해 인지하게 된다. 경기도에 있는 모 대학병원 정신과 외래에서 ADHD 치료를 받고 있는 최모(28)씨가 대표적 사례다. 그는 서울의 한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2016년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반복되는 실수로 동료는 물론 상사에게 눈 밖에 났다. 집중을 해서 업무를 처리하려고 했지만 결재 기한 내 업무를 마친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업무실적이 좋지 않았다. 업무 스트레스로 술을 마시는 일이 늘면서 지각하는 횟수도 증가했다. 결국 그는 입사 6개월 만에 퇴직을 했다.
퇴직 후 우울증세가 심해져 병원을 찾은 최씨는 성인 ADHD 진단을 받았다. 그는 최근 집에서 나와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 업무 스트레스를 이유로 강남의 비싼 술집에서 쓴 돈을 갚지 못해 독촉에 시달리다가 부모에게 고백을 하고 간신히 술값은 해결했지만 면목이 없어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있다. 전덕인 한림대평촌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ADHD는 아동기에는 과잉행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성인기에는 집중력 장애가 문제”라며 “집중력 장애로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우울 및 조울증상이 발생하는데 이때 알코올중독, 도박 등에 빠지면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인생의 황금기인 20대에 진학, 취업, 이성교제 등을 모두 포기한 채 산다. 충남 아산 윤씨의 경우 최근 지역의 대형마트에서 주차요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단기 아르바이트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편의점, 패스트푸드, 식당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당시 고객들이 불평을 하거나 짜증을 부리면 화를 참지 못하고 고객들과 실랑이를 벌여 숱하게 해고를 당한 경험 때문에 많은 사람을 대하는 일을 기피한다. 그는 “주차요원은 차를 탄 고객들에게 수신호만 하면 돼 사람들과 부딪칠 일이 없어 좋다”며 “가급적이면 사람을 대하지 않고 혼자서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모(20)씨도 2014년 8월 군 입대 전 신체검사에서 정신질환이 의심돼 재심판정을 받고 병원에서 성인 ADHD로 진단을 받았다. 박씨는 군에 취사병으로 가면 사격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 한식당 주방 일을 하며 요리를 배웠지만 한식요리사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했다. 3년 넘는 치료를 통해 상태가 호전된 그는 요즘은 식당을 옮겨 서빙 업무를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용기를 내 손님들을 응대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그는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까봐 무서워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두려웠는데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돼 다행”이라면서도 “평생 식당 서빙만 할 수는 없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누구를 의지해 살아가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치료를 받고 증상이 개선돼 가는 성인 ADHD 환자들마저 ADHD 환자를 바라보는 현실의 차가운 벽 때문에 취업에 좌절하기도 한다. 주의력 결핍 등으로 제대로 일을 해 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병명을 알자마자 해고하는 경우마저 있다. 경기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만난 성인 ADHD 환자 김모(22)씨는 “제조제빵 기술을 배워 지역 빵집에 취직했지만 사장이 내가 ADHD 환자라는 것을 알고 해고했다”며 “의사는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성교제나 결혼은 이들에게 언감생심이다. 윤씨는 “대학진학의 꿈을 접은 고등학교 3학년 봄, 모든 것이 귀찮아 가출해 또래 여자친구와 3개월 간 동거를 했지만, 술만 마시면 화를 내고 폭력을 휘둘러 여자 친구가 도망갔다”며 “당시 내 병명조차 몰랐는데 좀더 일찍 알고 치료를 받았으면 하는 후회가 몰려온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내 병명을 말하면 나를 만나줄 여자도 없고, 내 스스로도 이번 생애에서는 이성을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씁쓸해 했다. 박씨도 “식당 일을 하면서 내 병을 알고 있는 여자 친구와 만났지만 결혼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심세훈 순천향대 천안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직장이 없는데도 취업이나 진학할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직업훈련조차 받지 않는 이른바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중에는 성인 ADHD가 의심되는 이들이 상당수”라며 “이들은 좌절에 대한 조절능력 감소, 동기 부여의 어려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없는 사회부적응 상태가 고착화 돼 가정과 사회에서 버림을 받을 수 있어,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돌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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