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어긴 기사도, 승객도 과태료를 안내는 규제는 아무 의미 없는 것 아닌가요.”
택시기사 윤한국(66)씨는 9월 28일부터 바뀐 도로교통법에 갸우뚱했다. 자동차 뒷좌석 탑승자까지 안전띠를 의무적으로 매도록 법이 바뀌면서 윤씨도 법을 지켜야 하지만 택시는 사실상 사각지대가 됐기 때문. 단말기 안내음성 등으로 ‘안전띠를 착용해달라’고 고지만 하면 운전자도, 승객도 과태료(3만원)를 내지 않아도 되는 예외조항이 생긴 탓이다.
과태료 부과가 운전자에게만 적용되면서 ‘안전띠 착용을 안내해도 말을 듣지 않는 승객이 많다’는 업계 고충이 반영된 것이지만 윤씨는 “안전을 위해 뒷좌석 승객도 안전띠를 매라는 것이 법 취지인데 아무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으면 누가 지키겠느냐”고 되물었다. 더욱이 택시 탑승 시 안전띠 착용 안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찰은 법 시행과 동시에 택시에서 ‘뒷좌석 안전띠 착용’ 안내방송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지만 본보 기자들이 지난 28일부터 이틀간 10여 차례 택시를 이용했지만 별도 안내 방송은 들을 수 없었다.
뒷좌석 안전띠ㆍ영유아 카시트ㆍ자전거 안전모 착용 의무화를 골자로 한 개정 도로교통법이 시행됐지만 사문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규제’라는 업계와 운전자들의 민원이 빗발치는 등 사공이 많아지면서 법이 산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6세 이하 영유아 차량 탑승 시 카시트를 장착하지 않으면 과태료 6만원을 부과하겠다는 조항에 대해서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생후 23개월 자녀를 둔 김모(31)씨는 “아이와 씨름하기도 버거운데, 택시를 탈 때마다 손수 카시트까지 챙겨야 하는 것인가”라며 “부모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규제”라고 토로했다. 카시트를 장ㆍ탈착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영유아를 동반한 승객을 태울 택시기사가 얼마나 있겠느냐는 말도 나온다. 승차거부가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다.
이에 경찰청은 법 시행 당일인 28일 “카시트 보급률이 낮은 상황에서 미장착 차량을 단속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당분간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물러섰다.
법 시행으로 광역버스는 무법지대가 됐다. 시내버스와 달리 안전띠가 있는 광역버스는 법 적용 대상이지만 정원초과로 서서 가는 승객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광역버스 입석 승객은 법적으로 안전띠 착용 의무 위반에 해당하지만 국토교통부의 광역버스 입석 금지 정책이 정착돼야 단속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4년 무리하게 ‘수도권 광역버스 입석 금지’를 추진했다가 여론 뭇매로 한 달여 만에 폐지했던 국토부는 관련 정책을 다시 시행할 계획이 없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 경기도와 함께 2층 버스 등 광역 버스를 확충하고 있는 단계”라며 “현재도 승객 수에 비해 광역버스가 부족한 상황인데 입석을 금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의무화 대신 권고에 그친 자전거 안전모 착용도 시민 원성을 사고 있다.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이용해 등하교를 한다는 김모(26)씨는 “자전거 전용 차로의 차량 불법 주정차 등 도로 안전 문제가 더 시급하다”며 “기존 문제에 대한 개선 없이 규제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29일에는 자전거 이용자들이 서울 광화문에서 규제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문제가 되는 사안들은 관련 부처와 협의해 개선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오세훈 기자 comingh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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