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옐로스톤국립공원의 명물인 그리즐리 곰(알래스카 불곰의 일종) 사냥 허가를 둘러싼 공방이 환경단체, 주정부, 법원에 이어 의회로까지 번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멸종 위기종 보호 규제 완화를 시도하는 상황에서 그리즐리 곰 사냥 여부가 리트머스 시험지로 떠오른 모습이다.
1975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던 그리즐리 곰은 이후 꾸준한 복원 노력으로 옐로스톤국립공원에만 700 마리가 서식하면서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국이 지난해 멸종위기종 지정을 해제했다. 이에 와이오밍주 야생국은 지난 5월 그리즐리 곰에 대한 제한적 수렵을 올해 가을부터 허용키로 했다. 1974년 금지된 이후 44년 만에 사냥이 허용된 것이다. 하지만 환경 단체들이 즉각 반발해 법정 소송으로 이어졌다.
24일(현지시간) 나온 미 몬태나주 연방지법의 판결은 환경 단체들의 승리였다. 크리스텐센 판사는 특정 지역에만 서식하는 그리즐리 곰을 멸종 위기종에서 해제한 것은 당국의 권한 남용이라며 사냥 허가를 불허했다. 그는 이 곰의 미래 생존 위협에 대한 야생동물국의 분석도 자의적이고 일관돼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환경단체나 법원은 그리즐리 곰의 개체수가 늘긴 했으나 멸종위기종 해제로 사냥을 허용하면 종 복원이 또 다시 위협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리즐리 곰은 더 이상 보호 받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개체 수가 늘었고 주민들의 생활 터전까지 위협하고 있어 제한적 사냥을 통해 개체 수 조절이 필요하다는 게 트럼프 행정부와 주정부, 이 지역 목장주 등의 주장이다.
공화당 의원들도 즉각 가세했다. 미 하원 환경ㆍ공공 사업 위원회 의장인 존 버라소 의원(와이오밍ㆍ공화)은 성명에서 “이번 판결은 왜 의회가 멸종위기종법을 현대화해야하는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사례다”며 “그리즐리 곰은 지난 10년간 충분히 복원됐고 오바마 정부도 인정했던 것이다”고 반발했다. 그는 아예 당국이 멸종위기종 해제를 결정하면 5년간 법원이 이를 막을 수 없도록 하는 조항 등이 담긴 멸종위기종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논란 뒤엔 1973년 닉슨 정부 때 제정된 멸종위기종법 개정이란 더 큰 싸움이 도사리고 있다. 이 법에 따라 1,600여종의 동식물이 보호를 받고 있지만 지난 40여년간의 복원 노력에 따라 멸종위기종 해제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법을 완화하자는 게 공화당과 행정부 입장이다. 지나친 보호 규제가 주민 재산권과 지역경제 발전을 제약한다는 주장이지만, 환경단체들은 이 법을 개정하면 되레 야생동물 멸종법이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리즐리 곰 사냥 여부를 비롯한 멸종위기종법의 운명은 결국 11월 중간 선거에서 어느 정당이 의회를 장악하느냐에 달린 상황이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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