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녕 대한치매학회 홍보이사(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
고령시대다. 평균수명 100세를 바라 보는 이 시대에 화두는 얼마나 사느냐가 아닌 어떻게 사느냐이다. 많은 사람이 행복한 노후를 맞기 위해 노력한다. 행복한 노후에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건강한 삶이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50대 이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은 암이나 당뇨병이 아닌 치매로 나타났다. 치매는 환자 자신뿐 아니라 가족까지 고통 가운데 장기간 투병해야 하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진료 현장에서 40대의 건망증이 심한 평범한 사람들도 ‘제가 혹시 치매는 아닌가요’하고 묻는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치매라는 질병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치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누구나 가족 중 한 명은 겪었던 일을 토로한다. 그 이야기들의 주요 결말은 비극이다. 가족 중 누군가는 희생을 치렀고, 환자는 회복 없이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치료제도 없다. 이 때문에 치매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는 것 같다. 이런 인식은 치매를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점점 치매 관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서 이제는 사회가 공동으로 함께 해결해 가야 하는 질병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공감을 얻고 있다.
대한치매학회가 실시한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치매환자의 간병 부담으로 인해 보호자가 직장을 그만둔 비율은 2012년 27%에서 올해 14%로 줄어들었다. 노동시간 단축 비율도 같은 기간 51%에서 33%까지 감소했다. 이는 그간 국가적인 치매대책을 통해 치매안심센터 등 치매환자 보호 시설 증가, 노인장기요양보험 확대 운영 등으로 인한 결과로 해석된다.
치매는 다른 질병과 달리 원인과 증상이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이기 때문에 치료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초기부터 꾸준한 관리를 한다면 치매가 급속도로 악화되지 않도록 진행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치매를 잘 관리할 수 있는 방법으로 환자가 일상생활수행능력(ADLㆍactivities of daily living)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수행능력은 목욕하기, 옷갈아입기, 식사하기, 앉기, 걷기, 화장실 이용하기 등 기본적인 일상 활동을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지표다.
대한치매학회는 치매 환자의 일상생활수행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대안 프로그램으로 2015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과 치매환자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일상예찬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외출은 치매 환자의 가장 어려운 활동 중 하나다. 미술관 외출을 통해 미술을 전혀 모르는 치매 환자도 일상의 기억을 더듬어 자기만의 작품을 만드는데, 이처럼 기억과 손으로 하는 활동의 조합은 치매환자에게 도움이 된다.
2009년부터 영국은 치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치매 환자와 간병인의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영국 치매협회는 런던을 2022년까지 ‘치매 친화 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가까운 일본을 살펴보면 주민과 직접 만나는 의료시설이나 치매카페에서 치매 발병 사실을 조기에 발견해 센터와 연결, 병의 진행 단계에 따라 상이한 돌봄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조정한다. 앞으로 우리 나라에서도 실질적으로 치매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참여형 프로그램을 더 자주 만나기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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