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 법사위원회가 과거 성폭력 의혹이 제기돼 논란에 휩싸인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지명자의 인준안을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보강 조사를 조건으로 통과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용해 FBI의 조사를 명령하면서 상원 전체 투표 절차는 당분간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상원 법사위의 공화당 소속 의원 11명은 28일(현지시간) 캐버노 대법관 지명자의 인준안을 제청하고 상원 전체 인준 투표 절차로 넘어가는 데 동의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성폭력 피해를 주장한 크리스틴 블레이시 포드 팰로앨토대 교수의 주장은 신뢰성이 있으나, 캐버노 지명자가 강력하게 부정하므로 성폭행은 있었으되 범인은 다른 사람일 것”이라는 이유로 찬성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에 민주당 소속 의원 10명은 모두 반대하고 투표 진행 도중 회의실을 떠나는 등 당색에 따라 입장이 극명히 갈렸다.
다만 법사위 소속 공화당 의원 가운데 중립파로 분류되는 제프 플레이크 상원의원은 투표 막판 “성폭행 의혹 관련 제한시간이 있는 FBI 수사와 전체 투표 연기가 진행된다는 전제 하에 지지한다”라며 조건부 찬성 의사를 밝혔다.
플레이크 의원은 마지막까지 캐버노 지명자의 인준안에 대한 동의 여부를 고민하면서 법사위 인준의 ‘캐스팅 보터’로 여겨져 왔다. 플레이크 의원을 설득하기 위해 상원을 방문한 여성 성폭행 생존자 가운데 2명은 플레이크 의원을 엘리베이터 앞에서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설득하는 모습이 방송 카메라에 잡혔다. 이 사건의 영향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민주당 측이 플레이크 의원을 막판 설득하는 데 성공하면서 캐버노에 대한 FBI 조사 요구를 관철할 수 있었다.
비슷한 성향의 리사 머카우스키 상원의원 역시 플레이크 의원의 요구를 지지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현재 미국 상원은 공화당이 51대 49로 우위에 있지만 공화당 소속 의원 2명만 돌아서면 캐버노 대법관 지명자의 인준이 불가능한 상태다. 따라서 플레이크와 머카우스키, 최소 두 의원이 FBI조사를 요구한 이상, 인준 일정도 조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공화당의 당초 계획은 캐버노 지명자의 인준을 이르면 다음주 초인 10월 1일 혹은 2일에 처리하는 것이었다.
캐버노를 지명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상원의 요청을 수용해 FBI에 추가 조사를 명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사위에서 인준 제청이 통과된 후 “인준을 위해 요구되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또 성폭력 피해를 주장한 포드 교수의 주장이 “강력하다(compelling)”면서도 캐버노의 지명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정부가 FBI 조사에 동의한 것은 ‘캐버노는 이미 검증이 완료됐다’는 기존 입장에서 후퇴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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