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38년 만에 전면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두고 재계와 시민단체의 입장이 엇갈렸다. 재계는 담합에 대한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고소ㆍ고발이 크게 늘어 기업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우려한 반면, 시민단체는 대기업 ‘면죄부’로 전락한 전속고발권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감 몰아주기 및 지주회사 규제 강화 등 전반적인 ‘재벌개혁’ 밑그림을 두고서도 재계와 시민단체는 평행선을 달렸다.
공정위는 28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지난달 24일 입법예고(10월4일 마감)한 개정안에 대한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마지막으로 듣는 자리였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개회사를 통해 “개정안은 (공정거래법이 제정된 1980년 이후) 38년 만에 전면 개편이자, 향후 30년간 우리의 경쟁법 집행을 좌우하는 매우 중차대한 작업”이라며 “오늘 제시된 의견들을 면밀히 검토해 향후 입법 과정에 최대한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속고발권 폐지…재계 “남소 우려” 시민단체 “전면폐지”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가격 짬짜미나 시장 나눠먹기 같은 중대한 담합 행위에 대한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 대해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기소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담합을 저지른 기업에 대해 검찰은 곧장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
이재원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전속고발권 폐지로 경쟁사의 악의적이고, 음해적인 고소ㆍ고발이 남발되는 경우 대기업과 달리 자체 법무팀이 없는 중소기업의 부담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며 “만약 전속고발권 선별 폐지가 필요하다면 보복조치, 사익편취(일감 몰아주기), 부당지원 행위부터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양균 중견기업연합회 정책본부장도 “전속고발권 폐지로 누구라도 검찰에 고발할 수 있어 고소ㆍ고발 남용이 우려된다”고 우려했다.
반면 시민단체 측은 전속고발권 ‘전면 폐지’를 주장했다. 김종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변호사는 “공정거래법 위반 범죄 중 담합에 대해서만 전속고발제를 폐지할 이유가 없다”며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보장하기 위해 전면폐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공정위가 각종 갑질을 선(先)조사한 후 검찰에 고발하지 않으면 피해 기업이나 개인 입장에선 형사처벌을 요구할 수가 없는데, 전속고발권을 전면 폐지해 선택지를 넓혀줘야 한다는 것이다.
◇재벌개혁…재계 “너무 강하다” 시민단체 “너무 약하다”
재벌개혁 방안을 두고도 재계와 시민단체는 평행선을 달렸다. 현재 총수일가 지분이 30%(비상장사 20%) 이상인 대기업 계열사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는데, 개정안에는 이 지분 기준을 상장ㆍ비상장 구분 없이 20%로 낮추기로 했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상무는 “(총수일가 보유 지분율이) 20~30%인 대기업 상장사의 경우, 내부거래 비중이 2014년 29.5%에서 지난해 26.6%로 감소하는 등 규제 강화 근거가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재벌개혁위원장인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기준을 낮춰도 (총수일가가 직접 보유한 지분을 20% 미만으로 낮추는) 방식의 규제 회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며 “공정위가 과연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사익편취를 방지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서정헌 중소기업중앙회 상생협력부장은 “일부 재벌은 총수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로 일감을 몰아줘 해당 계열사 가치를 높이고, 총수일가에 막대한 자본이득을 안겨주고 있다”며 “개정안에 동의한다”고 평가했다. 재계 내에서도 중소기업계는 환영 입장을 나타낸 셈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지주회사가 반드시 보유해야 하는 자회사와 손자회사 지분율을 현행 상장사 20%, 비상장사 40%에서 각각 30%, 50%로 높이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그 동안 정부가 대기업의 지주회사 전환을 유도해온 측면을 감안해 새로 만들어지는 지주회사에만 적용된다. 이에 유환익 한경연 상무는 “31개 대기업집단 중 12개 집단이 지주회사로 전환한다고 가정할 경우 (지분율 요건 강화로) 상장사 지분 확보에 12조9,000억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며 “(만약) 기업들이 이 비용을 투자한다고 가정 시 27만8,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주회사 규제 강화가 대기업의 신규 일자리 창출을 저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박상인 교수는 “공정위 실태조사를 보면 지주회사가 손자회사ㆍ증손회사 등을 대폭 늘려 (총수일가) 지배력을 확대해온 것으로 확인된다”며 “그런데 개정안은 출자단계 규제 개선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공정위는 다음달 4일까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고,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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