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ㆍ러시아가 유엔 무대에서 대북제재 완화 문제를 놓고 또 다시 충돌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선을 제압하려는 미국과, 비핵화 논의 과정에서 대북 지렛대를 확보하려는 중국 및 미국을 견제하려는 러시아가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27일(현지시간) 제73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논의 과정에서 확연한 시각차를 드러내며 공개적으로 맞붙었다. 이날 장관급 안보리 회의를 주재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제 새 시대의 새벽이 밝았다”며 북미 직접대화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하면서도 대북제재 이완 가능성을 경계했다. 그는 “안보리 결의 2397호에 따라 올해 대북 정제유 공급량을 연간 50만배럴로 제한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면서 “미국은 명백히 금지된 선박 간 옮겨싣기로 불법 수입이 이뤄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어 “안보리 결의안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실현할 때까지 반드시 힘차게 계속돼야 한다”면서 북한의 최종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제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선 비핵화, 후 제재 해제’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에 대해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대북 압박은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며 제재 이행과 정치적 해법은 동등하게 중요하다”면서 “최근의 긍정적인 진전을 고려할 때 북한이 비핵화를 더 밀고 나아갈 수 있도록 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비핵화 의지를 천명하고 영변 핵시설 폐기 의사 등을 밝힌 만큼 이런 기류를 가속화할 수 있는 ‘당근’을 제시하자는 취지다.
지난 17일 긴급소집된 안보리에서 대북제재 위반 여부를 놓고 미국과 충돌했던 러시아도 중국에 동조하고 나섰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북한이 중요한 비핵화 조치를 하는 상황에서 제재를 강화하는 건 부적절하고 북한의 인도적 위기를 낳을 뿐”이라며 “북한의 점진적인 조치들에 따라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과 중국ㆍ러시아 간 입장 차이는 향후 북한 비핵화 논의와 관련한 전략의 충돌이다. 북미 협상의 실무를 총괄하는 폼페이오 장관이 평양 방문을 앞두고 제재 이행을 강조한 건 협상력을 제고하려는 의도다. 또 중국과 러시아를 향해 앞으로 전개될 비핵화 논의 과정에서 한발 물러서 있으라는 경고의 의미도 포함돼 있다.
반면 중국은 러시아를 등에 업고 북한을 지렛대 삼아 비핵화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실제 왕 국무위원은 이번 유엔 총회 기간에 “6자회담은 여전히 없어서는 안될 다자 플랫폼”이라며 새삼스레 6자회담 재개 카드를 꺼냈다. 미국이 반대하더라도 다자 논의틀 내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다.
베이징(北京)의 한 외교소식통은 “대북제재 완화 논란은 사실상 비핵화 논의 과정에서의 ‘차이나 패싱’(중국 배제)을 둘러싼 미중 간 힘겨루기의 한 단면”이라며 “유관국들이 협력ㆍ동의하는 평화체제 구축을 명분으로 중국이 6자회담 재개를 강력 주장할 경우 비핵화 프로세스를 둘러싼 미중 갈등이 심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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