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대 18조원 규모 수주 놓쳐
100조원대 연쇄 수주 잠재효과에도 차질
KAI “현격한 가격차이로 탈락”
“미국산 우선, 록히드마틴이 입찰 주도 등 KAI로선 구조적 한계” 분석도
미국 록히드마틴과 함께 약 18조원 규모의 미국 공군 고등훈련기 교체사업(APT) 수주를 노리던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입찰경쟁에서 탈락했다. 미 공군기 납품업체라는 상징성을 더해 향후 100조원 가량의 잠재 사업기회를 노리던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미 공군은 27일(현지시간) 고등훈련기 교체사업 낙찰자로 보잉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보잉은 사브와 컨소시엄을 이뤄, 록히드마틴-KAI 컨소시엄과 마지막까지 치열한 수주전을 펼쳤다. 미 공군은 “보잉과 92억달러(약 10조원) 규모의 훈련기 교체사업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APT는 57년 된 미 공군의 T-38C 훈련기를 교체하는 대형 사업이다. 미 공군은 “당초 훈련기 351대와 시뮬레이터 46대를 구매할 계획이었으나, 이번 계약으로 훈련기 475대와 시뮬레이터 120대를 확보하게 됐다”고 밝혔다.
미 공군이 보잉을 선택한 주된 이유는 저렴한 가격으로 알려졌다. 미 공군은 사업 예정가격을 163억달러(약 18조원)로 책정하고 있었으나, 보잉 컨소시엄은 92억달러에 훈련기 125대, 시뮬레이터 74대까지 더 제공하는 파격 조건을 내세웠다. 실제 미 공군은 발표문에서 “경쟁을 통해 최소 100억달러를 절약하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KAI 관계자는 “이번 입찰에 실패하면 사실상 군용기 사업을 접어야 하는 보잉의 절박함이 출혈 수준의 베팅을 감수하게 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KAI는 이 사업의 규모와 상징성 때문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록히드마틴-KAI 컨소시엄은 우리 공군 고등훈련기 T-50을 개량한 T-50A를 미 공군에 제안했다. 록히드마틴은 자체 훈련기 모델이 없지만 T-50 개발단계부터 KAI와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다. 미 공군에 훈련기를 납품하면 그 실적이 미군의 추후 입찰은 물론, 다른 국가 입찰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KAI는 이번 수주에 성공할 경우, 2030년대 미 해군용 훈련기 650대(30조원대), 제3국 시장 수출(약 50조원) 등 관련 사업규모가 100조원대까지 확장될 걸로 전망하기도 했다.
KAI는 28일 입장자료에서 “최저가 낙찰자 선정 방식에 따라 보잉이 선정됐다”며 “록히드마틴은 KAI와 협력해 전략적인 가격으로 입찰에 참여했으나 보잉의 저가 입찰에 따른 현격한 가격 차이로 탈락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보잉이 대규모 손실을 감수해야 할 만큼 워낙 낮은 가격에 선정된 만큼 KAI로선 불가피한 결과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정부에서 외국업체로서 수주 경쟁에 구조적인 한계가 컸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은 이번 입찰의 조건으로 ▦미국 업체가 주계약 당사자여야 하고 ▦부품 절반 이상은 미국산이어야 하며 ▦최종 조립은 미국 내에서 이뤄져야 하는 등의 까다로운 제한을 걸었다.
이에 따라 입찰 가격 결정권도 주계약업체 록히드마틴이 행사해 KAI로선 경쟁력을 높일 뾰족한 카드가 없기도 했다. 김조원 KAI 사장은 작년 11월 간담회에서 “보잉이 엄청난 덤핑을 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우리는 원가절감에 최선을 다할 뿐이고 저가 수주까지 갈지는 록히드마틴이 판단할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대형 수주전 실패로 향후 T50의 경쟁력 차질은 불가피해 보인다. KAI 관계자는 다만 “개발, 구매가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사업인만큼 T50의 성능을 더욱 고도화해 다른 기회를 계속 발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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