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희귀암으로 숨진 김범석 소방관. 유족들은 ‘암과 직무의 관련성이 없어 보상할 수 없다’는 국가와 4년째 법정 투쟁 중이다. 고인의 아버지는 “손자에게 ‘네 아버지는 그냥 병을 얻어 죽은 게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소방관으로 살다가 숨졌다’고 말해줘야 해 싸움을 그만둘 수 없다”고 했다.
고 김범석 소방관은 8년간 근무하면서 1,000회 이상 출동한 ‘베테랑’ 소방관이었다. 그는 2013년 8월 훈련 도중 호흡곤란 증상으로 병원에 갔다가 ‘혈관육종암’ 진단을 받았다. 원인을 알 수 없이 혈관에서 암세포가 자라는 중증 희소병이었다. 그는 이듬해 6월 갓 돌이 지난 아들과 아내를 남겨둔 채 31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에게는 “(공무상 상해로) 인정받기 힘든 거 알아. 그래도 소송이라도 해줘.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소방관 아빠로 기억됐으면 좋겠어”라는 유언을 남겼다.
당시 공무원연금공단(이하 공단)은 “직무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며 보상을 거부했다. 유족은 “신체 건강했던 김 소방관이 화재현장의 유해물질과 업무상 스트레스로 병을 얻었다”며 2015년 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공단과 같은 이유로 ‘공무상 사망 불인정’ 판결을 내렸다.
고인의 아버지 김정남씨는 28일 MBC 라디오 ‘이범의 시선집중’을 통해 “(다음달 25일 예정된) 2심에서 패소할 수도 있겠지만 끝까지 갈 것”이라며 “그것이 아들의 유언이기도 하고 헌신했던 소방관을 나라가 버렸는데 누군가는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천의 39세 소방관이 똑같은 혈관육종암 진단을 받았다. 인구 5,000만명에서 이 희귀암에 걸린 게 4명인데 그 중 소방관이 2명이라면 인과관계에 의한 발병 사례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이를 재판장님께 전달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씨는 ‘발병 원인을 밝혀낼 수 없다는 이유로 병을 얻은 것은 국가의 책임이 아닌 본인의 책임이라는 공단의 주장은 부당하다’는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렸다. 공무원이 질병으로 사망했을 때 공무와의 연관성을 본인이나 유족이 입증해야 하는 현행 제도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해 김범석 소방관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이 ‘독소조항’을 개정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일명 김범석 소방관법)이 발의됐으나 1년 넘게 국회 계류 중이다. 3년 이상 위험직에 종사한 공무원의 경우 중증질환에 걸리면 먼저 공무상 재해로 처리하고 이후 다른 이유가 밝혀지면 국가의 책임을 면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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