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극장가는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다. 개천절에서 한글날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연휴를 맞아 신작 영화가 또 한번 쏟아져 나온다. 다음달 3일 한국 영화 ‘암수살인’과 디즈니 애니메이션 실사판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마블 영화 ‘베놈’이 겹치기 개봉한다. ‘안시성’과 ‘명당’ ‘협상’ ‘더 넌’이 동시에 출격한 추석 연휴와 경쟁구도가 흡사하다. 추석 개봉 영화들이 뒷심을 받아 10월 초까지 흥행 기세를 이어온다면, 여름 시장과 추석 연휴보다 더 극심한 대혼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암수살인’은 신고도 없고 시신도 발견되지 않아 수사기관에 인지되지 않은 살인사건을 말한다. 영화는 추가 살인 7건을 자백한 살인범(주지훈)과 그 자백의 진실을 파헤치는 형사(김윤석)의 팽팽한 심리전으로 전개되는 독특한 수사물이다. 잔혹한 묘사 없이도 공포와 긴장을 조성하는 연출이 아주 매끈하다.
곰돌이 푸와 어른이 된 크리스토퍼 로빈(이완 맥그리거)의 따뜻한 우정은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에 담겼다. 행복해지기 위해 일하지만 오히려 자신을 잃어버리고 가족과도 멀어진 로빈이 어릴 적 친구 푸를 만나 예기치 못한 모험을 겪으며 웃음을 되찾는 이야기다. 소확행과 워라밸 등 삶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우는 메시지가 관객과 공감할 지점이 많아 보인다.
마블 영화 최초로 악당 영웅을 내세운 ‘베놈’도 기대작이다. 진실을 쫓는 기자였지만 외계 생물체의 공격을 받아 악당으로 다시 태어난 베놈(톰 하디)이 난폭한 힘을 휘두르며 액션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선과 악의 경계에서 겪는 정체성 혼란도 담긴다. 베놈의 기괴한 외모는 특히 무시무시하다.
위용이 만만치 않은 신작 영화의 공습에 대비해 추석 영화 ‘안시성’과 ‘명당’ ‘협상’은 다시 엔진에 기름칠을 하고 흥행 질주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9월 마지막 주말에도 전국 주요 도시 극장으로 배우와 감독이 관객을 만나러 출동한다. 극장 관계자들은 공포물이라 확장성이 제한적인 ‘더 넌’을 제외하고는 ‘안시성’과 ‘명당’ ‘협상’ 모두 흥행 기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거라 전망하고 있다.
이들 세 영화가 10월 초 징검다리 연휴까지 노리는 이유는 추석 연휴 실익이 예상보다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1위를 수성한 ‘안시성’조차 아직 갈 길이 멀다. ‘안시성’은 지난 19일 개봉해 27일까지 371만3,487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불러모았다. 마케팅비 등을 포함한 총제작비 220억원을 회수하려면 600만명을 동원해야 한다. 요컨대 수익은 600만명 이후부터 발생한다. ‘손해 보지 않는 장사’ 면에서는 손익분기점이 250만~300만명인 ‘명당’과 ‘협상’이 상대적으로 유리해 보이기도 한다. ‘명당’은 27일까지 172만8,283명을 불러모았고, ‘협상’은 137만4,385명을 기록했다. 이례적으로 대작 영화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선택지가 늘어났고 관객도 고르게 분산돼,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는 보기 드문 시장이 형성됐다.
황재현 CGV 홍보팀장은 “이번 추석 영화들은 서로 시너지를 내기보다 견제하는 효과가 더 크게 작용한 것 같다”며 “여름 시장의 ‘신과 함께: 인과 연’처럼 특정 영화가 시장을 주도하면서 전체 관객 규모를 키우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힘이 다소 약했다”고 분석했다. 황 팀장은 “다행히 관람평이 나쁘지 않고 관객수 감소 폭도 크지 않아서 어느 정도 뒷심이 발휘될 것으로 보인다”며 “추석 영화가 10월 초 극장가에서도 관객의 선택지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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