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를 초토화 시킨 제24호 태풍 ‘짜미’와 제21호 태풍 ‘제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크다. 지난달 4일 일본에 상륙한 태풍 제비는 달리던 대형 트럭을 넘어뜨리고, 정박 중인 2,591톤급 유조선을 이동시킬 만큼 강력했다. 제비가 지나간 지 한 달도 안 된 지난달 30일 일본에 상륙한 태풍 짜미는 수도권을 포함한 일본 열도를 따라 종단하면서 인명 피해가 속출했다. 강한 태풍을 많이 겪어 대비가 잘 되어 있는 일본도 기록적인 강력한 태풍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두 태풍의 이동 경로를 보면, 기압 배치가 조금만 달랐어도 일본 대신 우리나라로 올 수도 있었다. 올해 우리나라에 상륙했던 태풍 ‘솔릭’도 처음에는 일본 규슈 지역을 지나갈 것으로 예측됐으나, 결국 한반도를 관통하였다. 일본으로 갈 태풍이 며칠 사이에 북태평양고기압이 강화되면서 우리나라로 온 것이다. 만약 태풍 제비와 짜미가 우리나라를 관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피해는 아마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2년 ‘루사’와 2003년 ‘매미’ 이후 강력한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은 적이 거의 없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과거 태풍의 장기 기록을 보면, 어떤 지역에 태풍의 영향이 적은 시기가 지나고 나면 태풍에 큰 영향을 받는 시기도 반드시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10년 이상 강한 태풍이 우리나라를 비껴갔다면 이 다음에는 큰 태풍이 올 확률이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걱정스러운 것은 최근 지구온난화의 속도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해역의 수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에 상륙하는 태풍은 대만 부근 위도 25도 근처에서 가장 강한 강도를 보이고,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바다의 낮은 수온 때문에 급격히 약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한반도로 향하는 태풍의 이동 경로에 놓인 바다 수온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태풍은 예전보다 더 강한 강도를 유지하고 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로 향하는 태풍을 딴 곳으로 보내거나 약화시키거나 하는 기술은 아직 없다. 아마 가까운 미래에도 인간이 태풍을 통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태풍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태풍을 잘 예측하여 대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태풍의 이동경로와 강도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에 접근하는 태풍은 중위도 기압계의 형세와 강도에 따라 이동 방향과 속도가 달라지고, 이로 인해 태풍의 강도도 변화하기 때문에 예측이 더욱 힘들다.
미국은 자국에 접근하는 허리케인에 대해 허리케인 전용 비행기를 이용하여 관측하고, 관측한 자료를 수백 명의 연구진과 현업관계자가 활용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태풍 예측 및 연구에 투입되는 인력과 연구개발(R&D)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번 태풍 솔릭을 통해 우리나라에 태풍 전문가가 얼마나 적은지 드러났다. 이제 우리도 태풍의 예측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투자 확대, 무엇보다 태풍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와 기상청은 우리나라 자연재해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태풍에 대한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태풍에 대한 철저한 대비는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부족함이 없다.
문일주 제주대 태풍연구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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