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4집 가수다. 말이 14집이지, 미니앨범과 싱글을 더하면 셀 수 없이 많은 앨범으로 오랜 시간 우리의 귀를 ‘호강’시켜주고 있는 그, 임창정이 돌아왔다.
지난 2016년 발매했던 정규 13집 ‘I’M’ 이후 2년 만에 새 정규 앨범으로 돌아온 임창정은 시종일관 유쾌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짬’에서 나오는 여유가 현장을 가득 채웠지만,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하고 솔직한 모습이었다.
“정규로 돌아온 건 2년 만인데, 이렇게 많은 앨범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녹음 하면서도 행복했어요. 15집은 과연 나올 수 있을까요.(웃음) 제 스스로 ‘과연 정규 앨범을 몇 장이나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여기가 끝은 아닐 거라는 용기를 가지고 앨범을 준비했어요. 특히 이번 앨범은 제 오래된 팬들이 오매불망 기다렸던 앨범이었는데, 그 친구들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어요. 그런 반응만으로도 이 앨범을 만드는 데 있어서 제가 받아야 할 건 충분히 다 받았다고 생각해요.”
지난 해 제주도로 이사한 임창정은 이번 앨범을 제주도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완성했다. 임창정은 제주도에서 완성한 이번 앨범에 대한 남다른 만족을 드러냈다.
“제주도에서 작업을 하면 마음의 여유가 있어요. 서울에서는 곡을 만들다가도 자꾸 다른 일들이 생기니까 바쁘거든요. 그래서 제가 만든 걸 복습할 시간이 없고, 그러다보니 놓치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주도에서는 시간이 많으니까 자꾸 만든 걸 또 보고, 고치게 돼요. 덕분에 매듭이 잘 지어지는 느낌이에요.”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인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이하 ‘하그사’)는 임창정의 제주도 작업실에서 처음으로 탄생했던 곡이다.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 오고 있는 작곡가 멧돼지와의 제주도 합숙을 통해 탄생한 ‘하그사’에는 여지없이 임창정 표 고음이 담겼다.
가수들도 소화하기 힘든 높은 고음에 대표적인 ‘노래방 도전곡’으로 꼽히는 임창정의 곡들에 “고음은 노림수냐”는 유쾌한 질문이 이어졌다.
“‘내가 저지른 사랑’에서 힘든 부분들이 있어서 이번에는 쉽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에 타이틀곡으로 생각했던 곡은 쉽게 썼었죠. 그런데 해당 곡이 타이틀곡이 안됐어요.(웃음) 이 곡은 타이틀 후보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높은 줄 몰랐어요. 녹음 부스에서는 노래를 끊어 부르다 보니까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던 거죠. 노래방에서 완창 하는 걸 미처 생각을 못한 거예요.(웃음) 모두 다 따라 부를 수 있게 하자고 했는데, 녹음하고 보니 또 고음에서 왔다 갔다 하는 노래더라고요.”
오랜 만의 정규앨범 발매인지라 임창정의 음악 방송 활동도 기대했건만, 무대 위 임창정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지난 22일 방송됐던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방송 활동 신비주의요? 그럴 리가요.(웃음) 사실 다른 앨범에서 방송 활동을 해봤는데, 그렇게 잘 되지 않더라고요.(웃음) 이 정도 활동하면 꽤 한 거라고 봐요. 예능에서도 잠깐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임창정은 짧은 방송 출연의 아쉬움을 올 연말 시작될 전국 투어 콘서트로 달랜다는 계획이다. 1995년 첫 가수 데뷔 이후 어느덧 23년 째 가수 생활 중인 임창정은 시간이 흐르며 마주하게 되는 한계를 받아들이며 오랜 시간 좋은 음악을 들려주기 위한 다양한 창구를 모색 중이다.
“어느 순간 예전처럼 목소리가 몽글몽글하고 단단하게 나오지 않는다는 걸 느꼈어요. 제가 회복력이 굉장히 좋아서 이틀을 공연해도 하루 만에 회복하고 또 노래를 하곤 했는데, 이제는 회복이 안돼서 어쩔 수 없이 연기를 한 적도 있었어요. 속상하긴 한데, 이상하게 노래를 부르면 기분은 좋아요. 목소리의 한계를 넘는 뭔가가 있구나 싶고, 어디가 끝인지 아직은 모르겠어요. 더 오래 알아가야 할 것 같고, 단순한 옥타브의 가능 여부를 넘어선 노래의 철학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언젠가 여러분들이 원하시는 목소리를 못 들려드릴 수도 있다는 걸 준비하고 있죠. 그 노력의 일환으로 배워본 적 없는 피아노에 도전해서 공연에서 건반으로 직접 노래를 소화할 수 있게 연습 중이에요. 다양한 노력은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가수 외에도 배우로서 활동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임창정. 올해 2월 개봉했던 영화 ‘게이트’ 이후 차기작을 고민 중인 임창정은 자신의 연기 생활을 새롭게 재단하겠다는 의외의 말을 거냈다.
“다음 작품에서는 주인공은 하지 않고 싶어요. 영화배우로서 임창정이 걸어온 길을 내려놓고 다시 조각을 하기 위해 어디부터 발걸음을 뗄지 고민 중이에요. 배우로서 제 스스로의 위치를 알고 조립품이 되고 싶어요. (이유가 있나?) 이 정도면 사람들이 반응을 해주고 웃어주지 않을까 해서 했던 연기들이 외면 받는 걸 보고 이젠 내가 표현한 것들이 식상하다는 걸 느낀거죠. 지금 제 위치를 알았다고 할까요. 대중들에게 나의 위치가 이 정도구나 하는 걸 느껴서 변화를 주고자 해요. 앞으로도 연기는 계속 해 나갈 건데, 넘어졌다고 안 일어날 수 없잖아요.(웃음)”
이처럼 가수로, 배우로 자신의 끊임없이 자신의 자리를 고민하며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임창정은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을 예고했다. 내년부터 직접 후배 양성에 뛰어들며 ‘제 2의 임창정’을 찾겠다는 것.
“지금 같은 시대에 제가 태어나서 대형 기획사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면 과연 지금처럼 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자신이 없어요. 생활고에 찌들어서 그냥 노래 잘 하는 생업 종사자가 되어 있을 것 같아요. 과거 수 없이 많은 오디션을 봤지만 떨어져서 힘들었던 저를 잡아줬던 학원 실장님처럼 저도 후배들에게 그런 존재가 돼서 숨은 진주를 찾고 싶어요. 1등 하는 아이들이 모여서 특등 가수가 되는 시스템 속에서 2등 하는 아이들이 모여서 데뷔한다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열정과 기본기가 있지만 1등이 아니라 데뷔에서 고배를 마시는 아이들을 뽑아서 키워보고 싶어요. 저는 열정과 성실함이 스타성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가수를 넘어 배우로, 배우를 넘어 제작자로. 데뷔 20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여전히 도전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임창정은 영원한 ‘만능 엔터테이너’로 불리고 싶다는 조그만 소망을 전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자신이 남고 싶은 궁극적 목표는 ‘좋은 사람’이라는 말과 함께.
“사실 예전부터 가져왔던 진짜 꿈이 있어요. 꼭 직접적인 일들이 아니라도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요. 물론 나중에 기부도 할 계획이지만, 그것 외에도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