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 권여선, 무라카미 하루키의 공통점은? ①소설가다. ②애주가다. ③술 이야기를 소설에 ‘많이’ 썼다. 그들의 문학을 누군가 주류(酒類) 문학이라 불렀던가. 일본 주류 문학의 대표 주자는 하루키다. 그는 소설가 데뷔 전 도쿄 재즈 바의 사장님이자 바텐더였다. 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카버, 레이먼드 챈들러,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까지, 하루키가 좋아하는 작가는 대개 알코올 중독자였다. 자기 관리의 화신인 하루키는 중독 근처에도 가지 않았지만.
그런 하루키의 술을 본격적으로 쓴 책,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가 나왔다. ‘나도 한 잔 하고 싶어진다’고 입맛 다시는 류의 에세이가 아니다. 하루키 작품 속 술을 고리로 풀어 쓴 술 문화사다. 저자는 하루키를 좋아하고 술은 끔찍이 좋아해 국가 공인 조주 기능사 자격증까지 땄다는 MBC 조승원 기자. “하루키의 술을 다룬 지구상 최초의 단행본”을 쓴 건 “내 자신이 너무나 읽고 싶어서”였단다. 기자의 글답게 넓고 쉽고 유용하다.
우선 하루키스트들이 반길 정보. 하루키 장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나오는 ‘맥주’라는 말은 모두 61번이다. 하루키가 40년간 쓴 소설에서 한번이라도 언급된 위스키 상표는 18개(스코틀랜드산 위스키 9개, 미국산 6개, 캐나다산 2개, 일본산 1개)다. 하루키 소설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맥주는 하이네켄, 위스키는 커티삭이다. 화이트 와인이 나오는 소설은 7편이다…
“42킬로미터를 완주한 뒤에 꿀꺽꿀꺽 단숨에 마시는 맥주의 맛은 최고의 행복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으로, 이를 능가할 만큼 맛있는 것을 나는 달리 생각해낼 수 없다.”(산문집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하루키는 맥주를 유난히 사랑한다. 소설 속 인물들도 그렇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주인공은 20시간 뒤 세계가 끝난다는 걸 알고도 한 모금의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싶어 한다. 차가운 맥주를 좋아하는 건 하루키의 취향. 저자는 그 취향에 이의를 제기한다. “하루키가 말하는 '골이 띵할 정도’의 온도(4도 이하)가 되면 시원하기만 할 뿐, 맥주 맛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
부드러운 와인은 여성의 술, 강한 위스키는 남성의 술이라는 진부한 도식은 하루키월드에서도 깨지지 않는다. ‘해변의 카프카’의 15세 주인공인 카프카 말고는, 남자 주인공은 모두 위스키 애호가다. 하루키는 위스키를 남성의 고독과 상처를 치유하는 묘약으로 그린다. ‘1Q84’의 덴고도, ‘상실의 시대’의 와타나베도, 위스키를 들이키는 것으로 아픔을 달랜다. 자매가 주인공인 ‘어둠의 저편’엔 위스키가 나오지도 않으니, 젠더 문제에 관한 한 하루키는 한결같이 고지식하다.
바텐더 출신인 하루키는 소설 속 인물이 아무 칵테일이나 마시는 걸 참을 수 없나 보다. 미모사, 발랄라이카, 솔티 독, 캄파리 소다, 김렛, 톰 콜린스까지, 캐릭터와 상황에 어울리는 칵테일을 소설에 등장시킨다. 헤밍웨이가 사랑한 칵테일로 이름 난 모히토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 나온다. 그렇다면, 모히토는 헤밍웨이와 하루키의 연결 고리일까. 저자에 따르면, 아니다. 쿠바 아바나의 한 바에는 헤밍웨이의 육필 글이 붙어 있다. 거기서 모히토를 마시고 감격해 쓴 글이라는데, 헤밍웨이 전문가들의 추적 결과 가짜로 판명 났단다. 이처럼 꼼꼼하고 열정적인 저자는 하루키 술 기행에 적합한 도쿄와 서울의 바, 하루키 술을 마시며 듣기 좋은 음악도 골라 준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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