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통도사ㆍ부석사 등 7개 사찰이 우리나라의 열두 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2019년 열세 번째 등재를 노리는 후보는 뭘까. 바로 서원(書院)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여러 부작용이 있어서 대원군이 대대적으로 철폐한 곳으로만 각인된 서원을 재조명하는 6권의 책을 최근 한꺼번에 내놨다. 석실, 도산, 덕천, 옥산, 돈암, 필암 등 경기, 충청, 영호남권을 대표하는 6개의 서원이다. 31명의 학자가 각 서원의 기원, 학풍, 사회적 영향력, 운영방식 등을 상세히 묘사했다. 서원은 단순히 모여서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정치적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가령 석실서원은 김상헌(1570~1652)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 병자호란 당시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한 김상헌은 절의의 상징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청나라가 주시한 정치적 문제아이기도 했다. 청나라에 끌려가기도 했고, 벼슬길이 막혔다. 말년에 경기 양주에 은거했는데, 그곳에다 지은 것이 바로 석실서원이다. 때문에 석실서원은 의리론을 중시하는 노론의 중심지이자 나중에는 안동 김씨 세도정권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반면 도산서원은 회유의 대상이었다. 출발은 도산서당이었다. 이황(1501~1570)이 정계 은퇴 뒤 자신만의 공부를 해 나가겠다던 오랜 꿈을 실현시킨 곳이었다. 이황의 학문적 명성 때문에 이황 사후 제자들이 서원으로 발전시켰고, 조선 각지의 공부 좀 한다 하는 선비들은 성지순례하듯 도산서원을 드나들었다. 탕평책을 내건 영ㆍ정조 입장에서는 이런 곳을 그냥 둘 수 없었다. 특히 정조는 조선역사상 처음으로 지방에 있는 도산서원에서 별도의 과거 시험을 치르도록 했다. 영남 남인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조치다.
돈암서원 편에서는 송시열의 스승이자 예학의 대가라 불리던 김장생(1546~1631)의 이야기들의 눈길을 끈다. 다른 유학자들과 달리 김장생에게는 유독 이런저런 이야깃거리가 많이 따라붙는다. 어릴 적부터 행동거지가 남달랐다거나 임진왜란 때도 김장생이 있는 마을은 왜군이 피해갔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다. 중요한 건 이 이야기들의 사실 여부가 아니다. 지금이야 예학이라면 다들 도망가기 바쁘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들이 널리 받아들여질 정도로 ‘예학’과 ‘김장생’에 대한 남다른 기대감이 있었다는 얘기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후보는 이 책에 포함된 도산ㆍ옥산ㆍ돈암ㆍ필암서원 4개에다 소수ㆍ병산ㆍ도동ㆍ남계ㆍ무성서원을 합쳐 모두 9개 서원이다. 내년 6월쯤 열릴 예정인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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