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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헤닝 만켈(10.5)

입력
2018.10.05 04:0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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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닝 만켈 원작의 BBC 드라마 '형사 월랜더'의 스틸컷. 케네스 브래너가 발란더(영어식으론 월랜더) 역을 맡았다.
헤닝 만켈 원작의 BBC 드라마 '형사 월랜더'의 스틸컷. 케네스 브래너가 발란더(영어식으론 월랜더) 역을 맡았다.

스웨덴 작가 헤닝 만켈(Henning Mankell)의 ‘쿠르트 발란더(Kurt Wallander)’는 술에 찌든 외롭고 우울한 남자지만 범죄에 맞설 땐 누구보다 집요하고 유능한 형사다. 9편 장편을 통해 그는, 자본주의의 가장 모범적인 모델을 구축했다고 평가받는 북유럽의 위선과 탐욕, 차별의 범죄들을 끈기 있게 추적한다. 그 끈기는 사건 자체의 미시적 상황에서 비롯되는 형사의 본능 혹은 사명감을 넘어, 염세하기 쉬운 거대한 체제 혹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혐오에 아주 질 수는 없다는 일종의 오기에 뿌리를 박고 있다. 그는 인류 공동체의 미래를 깊이 의심하면서도 조금 더 나은 길을 찾아 앞장서 넝쿨을 걷어내려는 존재다. 만켈이 자신의 분신이라 해도 좋을 말년의 발란더에게 기억을 잃어가는 병을 안긴 건, 독자로선 잔인하리만치 야속한 처사지만, 결코 이길 수 없고 포기할 수도 없는 그 싸움의 짐을 덜어주려는 씁쓰레한 연민의 한 방편이었을지 모른다.

만켈은 2014년 회복하기 힘든 단계로 진행된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의 일상 등을 담은 칼럼을 가디언 등 일간지에 발표하곤 했다. 그는 악성종양세포와의 줄다리기를 중심으로 재편된 자신의 세계를 응시하며, 또 의료적 판단과 배치되는 완치의 환상과 싸우며, 달라진 자신과 달라지지 않은 자신에 대해, 세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2014년 9월 칼럼에서 그는 동료 작가 페르 올로프 엔퀴스트(Per-Olof Enquist)가 썼다는 덤덤한 한 문장, “어느 날 우린 죽겠지만, 그 전까지 우린 살아 있을 것이다”와, 자동차 정비공장 벽에서 우연히 본 농담 같은 문장 “삶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라. 어쨌든 우린 살아서 삶을 벗어날 수 없다”를 곱씹곤 한다고 썼다. 그리고 그는 의학과 종양치료 기법의 발전으로 15~20년 전이었으면 누리지 못할 시간을 살고 있지만, “덤으로 사는 삶 같은 건 없다”고, “삶은 언제나 진지한 문제”라고 썼다. 그리고 암이 빼앗아간 것들과 함께 여전히 빼앗기지 않은 살아 있음의 기쁨과 내일을 향한 호기심을 확인한다. 발란더의 우울과 투지를 지탱하던 힘도 아마 만켈의 저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만켈은 1년 뒤인 2015년 10월 5일 숨졌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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