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없는 국가ㆍ민족 기구(UNPO, Unpresented Nations and People Organization)’란 국제사회가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국가ㆍ민족 구성체들이 1991년 결성한 대안 국제기구로, 2018년 현재 43개 회원 국가ㆍ민족이 가입돼 있다. 그들은 유엔 등 국제기구의 인정을 못 받아 대표를 파견하지 못하고, 당연히 환경 등 주요 국제 현안에 발언권도 없다. 자연재해 등 유사시 원조나 재난 구제, 분쟁 중재 등의 지원도 공식적으로는 받지 못한다. 중국 지배 하의 티베트, 유엔에서 쫓겨난 대만처럼 잘 알려진 예도 있지만, 대부분 이름조차 생소한 소수민족이나 선주민 단체, 스스로 독립을 선언한 소규모 국가ㆍ민족들이다.
UNPO 홈페이지는 스스로를 비폭력 민주 구성체들의 국제기구라 소개한다. 하지만 소수ㆍ약자라고 해서 온전히 비폭력ㆍ평화주의를 고수하는 것은 아니며, 또 모두가 피해자인 것도 아니다. 구소련 카프카스의 독립국 그루지아의 북서부 ‘압하지야(또는 압카지아ㆍAbkhazia) 공화국’이 그 예다.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1992년 이래 일련의 내전을 거쳐 수립한 흑해 연안 국가로, 8,660㎢ 면적에 약 25만 명이 거주한다. 그들이 휴전 중이던 1993년 9월 27일 당시 압하지야자치공화국 수도 수후미(Sukhumi)를 침공, 거주민 중 그루지아인 8,000~1만 명을 학살했다.
소비에트 체제하의 압하지야는 그루지아사회주의소비에트공화국(그루지아SSR)의 자치공화국으로서, 물론 스탈린 치하의 억압을 겪기도 했지만, 그루지아어가 아닌 압하지야 언어를 교육하고, 자신들만의 문화를 지켜왔다. 1980년대 말 소비에트가 분열하고 그루지아 독립이 임박해지자 소수의 압하지야 분리주의자들은 독립 투표를 거부하며 소비에트 체제 잔류를 희망했다. 그루지아가 1991년 4월 독립을 선포하자 분리파는 이듬해 7월 그루지아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 8월 내전이 시작됐다.
체첸 등 북부 카프카스의 무장 부족 등이 용병으로 가세했고, 러시아도 분리파를 지원했다. 전쟁 전 52만 명에 이르던 도시 인구는 내전과 저 학살을 겪으며 20만 명 남짓으로 줄었고, 목숨을 건진 그루지아인 20여 만 명은 난민이 됐다. 양측 전쟁은 1998년과 2001년, 2008년 산발적으로 이어졌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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