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평소 눈엣가시로 여겼던 로드 로젠스타인 법무부 부장관이 결국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총지휘하며 그동안 직ㆍ간접적인 해임 압력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켰지만, 최근 뉴욕타임스(NYT) 보도로 트럼프 대통령 발언을 몰래 녹음하려 하고 대통령 직무 박탈 방안을 논의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이 상황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는 소식통을 인용해 24일(현지시간) 이 같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해 해임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그에 앞서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에게 구두로 사의를 밝혔다는 것이다. 해당 소식통은 “로젠스타인 부장관은 자신이 해임될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도 로젠스타인 부장관이 ‘대통령 직무 박탈 방안 논의’ 의혹이 처음 제기된 직후부터 자진 사퇴를 고심해 왔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로젠스타인 부장관의 거취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73차 유엔총회 일정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복귀하는 27일 이후에 확실하게 매듭지어질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뉴욕에서 기자들에게 “우리는 백악관에서 만나서 어떻게 할지 정할 것이며, (일 처리가)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되길 원한다”며 “로젠스타인 부장관과의 면담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도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으로 복귀한 후, 27일 (로젠스타인 부장관과) 면담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로젠스타인 부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사의 표명을 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샌더스 대변인은 로젠스타인 부장관이 요청해 트럼프 대통령과 최근 뉴스 보도와 관련해 폭넓은 대화를 했다고 말했다. 이 때 로젠스타인 부장관이 사임 의사를 전했을 것이라는 게 상식적인 추정이라는 것이다. 다만 두 사람의 당시 대화 내용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방송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도 로젠스타인 부장관의 거취에 대해 “어떻게 할지 살펴보고 있다”면서 해임 여부를 최종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 뒤, “우리는 결정을 내릴 것이며, 그것은 분명히 통탄할 이야기”라고만 언급했다.
앞서 NYT는 지난 21일 앤드루 매케이브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대행의 메모를 입수했다면서 로젠스타인 부장관이 지난해 5월 트럼프 대통령과 자신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각 부처 장관들에게 수정헌법 25조를 발동하자고 부추겼다고 보도했다. 수정헌법 25조는 내각이 대통령의 직무수행 불능 여부를 판단, 대통령직 승계를 진행하는 세부 절차가 담긴 조항이다.
해당 보도가 사실이라면 로젠스타인 부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박탈’을 추진한 셈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었던 시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선 개입과 트럼프 대통령 측근들 간 공모 의혹을 수사하던 FBI의 제임스 코미 국장을 경질한 직후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초기에 해당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행정부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제거하려는 모의가 있었다고 폭로해 최근 워싱턴 정가를 뒤흔들었던 ‘익명 고위 관리의 NYT 기고문’ 내용과도 맥이 딱 맞아 떨어진다. 워싱턴포스트는 NYT의 이 같은 보도 이후인 23, 24일 백악관과 법무부 관리들이 활발한 논의를 했고, 로젠스타인 부장관이 24일 오전 백악관을 찾아가 ‘나의 사퇴가 논란을 끝낼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전했다.
법무부 2인자인 로젠스타인 부장관은 진작부터 트럼프 대통령에 의한 해임 가능성이 거론돼 왔던 인물이다. 제프 세션스 법무부 장관이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셀프 제척’ 선언을 해 버리자 그가 이 사건의 지휘 책임을 맡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특검 수사방향에 불만을 품으며 해임 검토를 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참모들의 강력한 만류와 세션스 장관이 ‘로젠스타인 해임 시 나도 물러나겠다’며 배수진을 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뜻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로젠스타인 부장관이 물러나게 되면, 정점으로 향하고 있는 러시아 스캔들 수사가 막판에 차질을 빚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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