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와 국토교통부의 ‘그린벨트 전쟁’이 좀처럼 끝나지 않을 모양입니다. 21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주택 공급을 위한 신규 택지엔 서울 시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은 없었습니다. 국토부는 ‘그린벨트를 풀자’고 하고 서울시는 ‘안 된다’고 했던 입장 차를 고려하면, 결과적으로 서울시의 승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꼭 그렇지 만도 않습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서울시와 이미 훼손돼 보존가치가 낮은 3등급 이하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협의하겠다”며 갈등의 불씨를 남겼습니다. 이어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 국토부 해제 물량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여의치 않으면 국토부가 서울시와의 협의 없이 직권으로 그린벨트를 해제하겠다는 겁니다.
앞서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 관련 발언으로 한 차례 크게 데인 서울시는 극도로 말을 아끼는 분위기입니다. 국토부의 공급 확대 방안이 발표된 같은 시각, 서울시청에서 2박 3일간의 방북 소회를 밝히는 브리핑을 개최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기자들이 ‘그린벨트 해제에 대한 입장’과 ‘함께 방북한 김현미 장관과의 논의 여부’를 묻는 질문에 시종일관 “이 자리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다” “일정이 겹치지 않아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고 즉답을 피했습니다.
국토부는 그린벨트를 풀어 부동산 시장에 확실한 공급 시그널을 주면 집값이 안정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최근 있었던 집값 폭등의 원인을 수급 불균형으로 진단하고, 양질의 주택을 다량으로 공급해 집값을 잡겠다는 계획이죠.
반면 서울시는 그린벨트의 환경적 가치를 내세우면서, 주택 공급의 방법이 꼭 그린벨트 개발일 필요는 없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린벨트를 훼손하지 않고도 이미 인프라가 마련돼 있는 도심 유휴지나 역세권을 활용해 주택 공급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이미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 발표로 집값 상승의 주범이 된 박 시장 입장에선 더더욱 그린벨트를 쉽게 풀기 어려운 형국입니다. 소신을 꺾고 그린벨트를 해제했는데, 집값이 잡히지 않는다면 그 후폭풍은 상상 이상일 겁니다.
실제로 서울시가 가장 우려하는 게 이런 시나리오입니다. 강남권에 쏠려 있는 그린벨트가 해제될 경우, 현재 1,100조원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는 시중 유동자금이 쏠리면서 의도와 상관 없이 집값이 급등할 수 있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예가 서초구 내곡동과 강남구 세곡동입니다. 이명박 정부 때 그린벨트를 풀어 보금자리 주택을 공급했지만, 결과적으론 이들이 ‘로또 아파트’가 돼버리면서 집값 안정은커녕 오히려 투기를 부추긴 전례가 있습니다.
한편 전문가들은 국토부와 서울시 양측 모두 지나치게 단기적인 관점에서 부동산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공급 대책 발표 시기를 못 박아 놓고 그린벨트를 풀자고 몰아 붙이는 국토부, 그린벨트 해제 요구를 막기 급급해 주민들과의 협의도 없이 택지 후보지를 물색해 국토부에 들이 민 서울시, 둘 다 너무 성급하게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겁니다. 수도권의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고 자신 있어 했던 국토부는 몇 달 만에 그린벨트를 해제해서라도 공급을 해야 한다며 입장을 뒤집고, 성동구치소 부지에 복합문화시설을 짓겠다던 서울시는 택지 확보를 위해 주민과의 약속을 한 순간에 깨버린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금은 모두가 유휴지든 토지든 손쉽게 개발할 수 있는 지역만 들여다 보고 있다”며 “양적으로만 접근하려고 하지 말고 어떤 위치에 어떤 유형의 공급이 필요한지, 시간을 두고 검토를 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부동산은 심리적인 측면이 크다고 합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집값이 요동칠 때마다, 면피용으로 내놓는 단발성 대책이 과연 투기 심리를 넘어 욕망으로 얼룩진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을까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일관되고 예측 가능한, 장기적인 관점의 부동산 정책만큼 이 광풍을 잠재울 묘약은 없을 것 같습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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