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천지 앞에서 손을 맞잡은 20일 서울에서는 두 가지 풍경이 교차했다. 프레스센터가 설치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광장에서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애국문화협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돈을 갖다 주니 백두산 구경을 시켜 준 것”이라며 ‘위장평화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청와대 부근에서는 또다른 보수단체인 자유총연맹 회원들이 ‘평화를 위한 평화회담을 지지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환영 집회를 열었다.
▦ 문재인 정부 들어 보수단체 분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진보 성향의 정부가 들어선 만큼 보수성향 단체의 활동 축소는 예상됐지만 일부의 이념적 변신은 생경하기조차 하다. 특히 국내 대표 보수단체인 재향군인회와 자유총연맹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게 놀랍다. 회원 수가 130만명에 이르는 재향군인회는 2013년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자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하고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런데 지난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때는 수천 명이 ‘정상회담 꼭 성공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몰려들었고, 당시 판문점을 향하던 문 대통령이 차에서 내려 이들과 악수를 나눠 화제가 됐다.
▦ ‘자유민주주의 가치 확산’을 모토로 350만명의 회원이 가입한 자유총연맹은 20일 ‘9월 평양공동선언’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단순 지지수준을 넘어 “남북화해 분위기 고조를 위해 자유총연맹의 역할을 깊이 모색하고 적극 협조하겠다”고까지 했다. 지난 4월 자유총연맹 회장에 취임한 박종환 전 경찰종합학교장이 문 대통령과 경희대 법대 동기인 터라 오해의 소지도 없지 않았지만 “인간 존엄 및 자유를 존중하는 헌법의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게 자유총연맹의 노선”이라는 입장이다. 재향군인회 역시 “안보의 본질은 결국 평화”라며 “보수, 진보 논리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보수단체의 현실적 변화 모색에도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당이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은 안타깝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우리 국방의 눈을 빼버리는 합의”라고 했고, 김성태 원내대표는 “영토주권 포기에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지방선거 패배 후 냉전반공주의 노선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은 공염불이 됐다. 정치적 적대관계인 문 대통령을 견제하겠다며 한반도 패러다임의 전환을 애써 부인하는 것은 소탐대실이다. 정당이 시대변화를 외면하면 기다리는 건 민심 이탈과 고립뿐이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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