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새롭게 추진되고 있는 ‘이혼법 초안’이 화제다. 이혼 부부가 자녀 양육 책임을 완전히 똑같이 지도록 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현지 여성들이 처해 있는 삶의 조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적이고 여성 차별적 법안’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아 찬반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18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해당 법안은 이혼한 부부에게 ‘자녀들에 대한 완전한 공동 양육’ 책임을 부과한 게 핵심 골자다. 이혼을 통해 헤어진다 하더라도, 아이들과는 각각 동일한 만큼의 시간을 보내고 필요한 양육비도 각각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부모 중 어느 한쪽에 양육비 지불 능력이 부족할 경우엔 보다 더 부유한 쪽에서 더 많은 비용을 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균등함’을 지향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만약 아이들 앞에서 전 배우자를 험담하거나, 자녀와의 관계를 이간질하면 양육권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한 조항은 1980년대 미국 심리학자인 리차드 가드너가 만들어진 ‘부모따돌림 증후군(Parental Alienation SyndromeㆍPAS)’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이는 이혼 분쟁을 겪는 부부의 자녀가 양친 중 한쪽에는 지나치게 결속되는 반면 다른 쪽에 대해선 이유 없이 거부 반응을 보이는 현상을 일컫는다. 다만 미국 심리학회는 PAS의 존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면서 이 증후군의 실존 여부에 대해선 “공식 입장이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입법 지지자들은 “아동 지원금으로 나가는 예산을 절약할 방법”이라면서 이탈리아 우파 포퓰리즘 정부가 추진 중인 이 법안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좌파 야당과 여성 단체들은 “여성의 삶을 옥죄는 법안”이라고 주장하며 반대 입장을 표하고 있다. 이탈리아 토리노의 반가정폭력센터 데메트라 대표는 “여성 권리를 50년 전으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고, 중도좌파 성향인 민주당의 발레리아 발란트 상원의원도 “엄마들의 삶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법안”이라며 비판했다.
해당 법안을 두고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보수적 분위기의 이탈리아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의 비율이 50% 미만인 반면, 아이 양육에서 있어선 ‘어머니’의 역할이 우선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 양육’에 기반을 둔 해당 법안이 시행되면, 그 동안 양육비를 받던 여성들로선 일자리를 나설 수 밖에 없게 된다. WP는 “자녀를 둔 여성들은 안정적 일자리를 찾느라 애쓸 수밖에 없고, 이혼 여성들의 빈곤율이 증가할 것이며, 심지어 가정 폭력 등의 이혼 사유도 참고 견디는 사례까지 등장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해당 법안은 현 집권연정 세력이 강하게 밀어 붙이고 있는 탓에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근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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